최근 경제관련 회의에 참석해 보면 전문가들마저도 경제에 대하여 깊이 우려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난 3분기까지의 경제지표는 걱정할 단계가 아니었지만 10월 이후 상황이 돌변했다.

내수가 급감하고 수출이 11월엔 6%대로 주저앉았다.

경기가 워낙 빠르게 뒷걸음질치다 보니 경기부양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런 변화를 아는지 모르는지,민·관 경제연구소는 내년도 경제성장률을 하나같이 5∼6%대라고 전망했다.

그런 정도의 성장이라면 우리 경제가 내년에 연착륙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경제위기를 경험한 국가들 중 한국은 몇가지 ''기록''을 갖고 있다.

우선 한국은 위기를 겪은 지 1년 만인 1999년에 11%에 달하는 경이적 성장률을 기록했다.

또 IMF로부터 차관을 지원받은 후 2년이 안돼 사실상 졸업을 선언했다.

그러나 이러한 가시적 성과들은 우리가 착실하게 경제체질을 개선하고 구조조정을 추진했기 때문에 얻어진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보다는 필사적인 저금리 정책과 원화가치 하락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IMF는 위기가 발발하자 기업과 금융부문의 구조조정을 추진하기 위해서 우리 정부에 고금리 정책을 요구하기도 했으나,소위 금리논쟁을 거친 후 이듬해 8월부터는 저금리 기조를 용인했다.

그 후 기업 구조조정은 저금리를 통한 부채비율과 금융비용 하락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금리가 크게 낮아지자 주식시장은 곧바로 활황국면에 돌입했으며,소비와 투자는 현저한 상승세를 탔다.

반면 저금리에 기초해서 추진한다던 기업 구조조정은 지연됐다.

지나치게 빠른 경기상승과 주식시장의 거품을 우려했던 사람들이 경기조절을 위해 금리인상을 건의하기도 했지만,저금리 기조는 꾸준히 유지됐다.

다른 나라 같았으면 벌써 몇차례 금리 인상이 단행됐을 법한데도 우리 나라 콜금리는 99년 2월 5%대에 진입한 이후 23개월째 그 수준에 머물러 있다.

지금은 저금리 약발이 사라진 채 경제가 온갖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주식시장에 거품이 빠지자 투자심리는 크게 위축됐다.

주가상승으로 흥청망청하던 소비심리도 꽁꽁 얼어붙었다.

저금리에 취해 구조조정을 등한히 하던 기업들은 자금난에 옴쭉달싹 못하고 퇴출을 강요당하는 지경이 됐다.

지난 경기 상승엔 저금리 말고도 환율상승이 큰 기여를 했다.

위기 이후 원화 환율은 무려 30% 이상 상승한 반면,엔화는 8% 가량 하락했다.

이러한 환율변동은 시차를 두고 수출을 끌어올렸다.

미국의 경기상승도 수출증가의 중요한 요인이지만,환율상승이야말로 1등공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나라와 일본의 환율이 안정권에 접어들자 환율변동은 더 이상 수출신장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내년도 경제 성장률은 여러 연구기관에서 발표하고 있는 5∼6%보다 훨씬 낮아질 가능성이 많다.

미국이 연착륙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우리 경제는 더 큰 타격을 입을 것이 분명하다.

만약 경기를 부양시키기 위해 또다시 저금리 정책과 같은 인위적인 조치를 취한다면 우리 경제는 그야말로 위기에 취약한 체질을 탈피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은 부양이 필요한 시기가 아니다.

늦었지만 IMF 경제위기의 초심으로 돌아가 강력한 구조조정을 꾸준히 추진해야 할 때다.

이번 기업 구조조정의 핵심은 생산성을 신장시키는 데 최종목표가 맞추어져야 한다.

사람만 내보내고 또 부채의 출자전환만으로 구조조정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기업의 생산성이 향상되고 채산성이 올라가서 돈 빌려준 금융기관의 수익성이 향상되는 선순환이 발생하도록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시장의 힘을 믿어야 한다.

시장은 조금만 불확실한 것이 있어도 잘 움직이지 않는다.

정부는 시장을 끌어가려 하지 말고 시장이 잘 기능하도록 시장에 내재한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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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약력=

△서울대 수학과
△미국 위스콘신대 경제학 박사
△미 아이오와주립대 교수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