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수 < 경희대 경제학 교수 / 아태대학원장 >

경제공황을 직접 겪은 대통령 만큼 개혁에 대해 심각하게 고뇌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미국의 후버 대통령이 대표적 예다.

우리나라와는 달리,미국에서는 대통령을 공황을 불러들인 장본인으로 낙인을 찍고 매도하지는 않았으나,명예스럽게 은퇴할 수는 없었다.

퇴임 후 모교인 스탠퍼드대학은 그의 이름을 딴 후버연구소를 세웠다.

시장경제와 자유주의 이념을 연구하는 세계적 권위의 연구소로 발돋움했으며,이제 후버의 이름은 경제공황 당시의 대통령보다는 자유시장개념을 지키는 연구소로 기억되고 있다.

공황을 겪은 대통령이기 때문인지 연구소 입구의 그의 어록은 다음과 같다.

"개혁을 해야 한다는 영감은 가슴으로부터 나오지만,개혁은 오로지 지성에 의해 성취될 뿐이다" 우리 들으라고 하는 소리처럼 느껴진다.

"한국경제가 실업률을 위기 전 수준까지 낮추었다는 점을 강조하는 데 이는 구조조정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을 스스로 얘기하는 것 아닌가" "글로벌화에 뒤진 것이 위기의 근본원인이라는 분석을 하면서도 아직도 국수주의적 행동이 지배하는 사회가 아닌가" "국가채무는 늘어가는 데 어떻게 그 수렁에서 벗어나려 하는가" "노동자들이 거리로 뛰쳐나오는 데 무슨 힘으로 구조조정을 추진할 것이며,어떻게 개혁에 대한 국민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겠는가" "통독 당시의 서독경제보다 강하지 못하면서 북한지원에 힘 쏟고 있는 것이 합리적인가'' ''지적재산을 보호하지 못하고,부정부패가 횡행하면서 선진국이 될 수 있는가"

한국경제를 설명하는 세미나에서 쏟아져 나온 외국 현지의 기업가 학자 언론인들의 비판이다.

실제로 위의 질문 어느 것 하나 예상치 못한 것은 아니다.

이러한 지적을 내부에서 자유롭게 토론함으로써 정책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확보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문제인 것이다.

중요 정책이 의견수렴 노력도 없이 불쑥 정해지는 상황 아닌가.

내부에서 의견이 다른 사람을 설득하지도 못하는 논리로 외국사람을 설득하기는 어렵다.

정치지도자들은 4대 부문 개혁을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논리로 강조하고 있다.

부문별 진전 상황에 대한 평가가 뒤따르지 않으면서도 일정만은 꼭 지켜 개혁을 완수하겠다고 한다.

상황변동에 따른 수정제안은 들어보지 못했다.

예를 들어 의약분업의 미숙한 추진으로 정부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졌고 힘겨루기라는 불행한 상태를 사회에 만연시켰건만,그래서 구조조정에 대한 노동자의 반발이 확산됐건만 아직도 당초의 개혁계획을 고집하고 있다.

이제는 솔직해질 때다.

나라 운영의 일관성 결여가 개혁 프로그램이 효과를 나타내지 못하는 요인이다.

말이 4대 부문 개혁이지 그 핵심은 노동시장 개혁에 있다.

금융·기업·공공 개혁도 결국은 인력감축으로 귀결된다.

인기에 영합하려는 정치지도자들이 시장경제개혁을 이루어냈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노동조합이나 이익집단에 맞서지 못하는 정부는 개혁을 주창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사회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도덕적 해이,부정과 부패의 의혹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어느 이익집단이 물러서겠는가.

우리는 지금 시장경제를 정착시킨다고 하면서 시장이 받아들이지 않는 정책을 서슴지 않고있다.

의약분업이나 대입 수능시험에서 보듯이 하향평준화나 형평에 치우친 사회정책이 경제개혁의 걸림돌이다.

냉엄한 국제경쟁력 제고에 국정운영의 최우선순위를 두지 않으면서 시장경제창달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가슴과 지성을 대비시키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슴과 지성이 일관성을 갖기 어렵다는 속성에 연유한다.

경제가 조금만 악화되면,또 개혁이 지지부진하다는 비판의 소리만 나오면 금모으기 운동의 초심으로 돌아가 합심해 개혁을 완수하자는 정치지도자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금모으기 운동을 개혁의 중요수단으로 생각하는 사회분위기에서 시장경제로의 개혁이 이루어질 리 없다.

최고의 합리성과 지성을 바탕으로 하는 개혁만이 경제에 효과를 미치기 때문이다.

chskim@kh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