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벤처 기업이 활성화되기는 어렵다"

얼마전 서울에 온 필자의 일본인 친구가 한 말이다.

일본에 진출해 있는 미국계 투자운용회사에서 30년 넘게 애널리스트와 펀드매니저 일을 해 온 투자전문가의 말이라 결코 흘려 들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가 안된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또 의외의 내용이었다.

한국에도 일본에도 투자가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투자가가 없다니,일본에는 없는지 모르지만 지난해 우리 나라의 코스닥,프리코스닥 기업에 몰려든 그 많은 투자가는 투자가가 아니란 말인가?

이같은 필자의 반문에 대해 그는 ''전문 투자가가 없다''는 뜻이라고 대답을 해왔다.

그가 말하는 전문투자가는 단순히 벤처기업에 자금을 대는 일뿐 아니라 그보다 더 중요한 세 가지의 기능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 가격평가(Valuation)기능이다.

현재는 자산가치도 없고,수익도 내지 못하는 기업에 투자하려면 주로 성장성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어찌보면 허황된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프로 투자가는 이런 투자대상 기업의 적정가치를 산출해 낼 수 있는 노하우를 갖고 있어야 한다.

둘째 경영자문(Consultation)기능이다.

벤처기업 경영자들은 엔지니어 출신들이 대부분이다.

기술개발에만 정열을 쏟았지 마케팅이나 재무 전략에는 문외한이다.

회사규모가 커지고 외부자금이 들어오면서부터는 이 부문에 대한 노하우 없이 회사가 지속적 발전을 할 수가 없다.

따라서 벤처기업 성공여부는 이런 풍부한 노하우를 가진 전문투자가를 만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셋째 경영에 대한 감시(Check)기능이다.

경영이 방만하게 흐를 우려가 있을 때에는 투자자금을 회수하겠다는 경고를 하는 등 경영자가 항상 긴장하도록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지난해 이후 벤처붐이 일고 꺼지는 과정에서,많은 투자가들이 피해를 입고 벤처사기꾼들이 속출했다.

앞에 설명한 전문투자가의 역할이 거의 없는 가운데 본래 벤처시장에 직접 참가해선 안될 개인투자자들까지 몰려들어 이른바 ''묻지마 투자''를 했기 때문인 것이다.

증권거래소 상장기업에 대한 투자시장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상황은 마찬가지다.

전문투자기관의 기능은 거의 마비돼 있고,개인투자자들의 단기투기거래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상황이다.

은행·보험사들은 구조조정에 정신이 없고,투신과 투자자문사는 투자자로부터 신뢰를 잃어 운용자산이 계속 줄어들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금이 대량으로 유입됐다고는 하나 소수의 대형주에 집중돼 있을 뿐이다.

미·유럽 상장기업들이 늘 긴장하여 주주 중시경영을 하는 이유는,성격은 다소 다르지만 앞에 설명한 평가기능·컨설팅기능 및 경영에 대한 견제기능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투자가를 경시한다는 이유로 경영자가 기관투자가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해임을 당하는 사례도 많다.

미국 최대 연금기금인 ''캘리포니아주 공무원 퇴직연금보험(CalPERS)'' 같은 경우는 이 기금이 투자하는 기업이면 미국 국내뿐 아니라 해외 기업에까지도 이 기금이 정한 ''기업경영원칙''을 제시한다.

IMF 금융위기 이후 우리 나라 금융구조는 급격하게 직접금융중심 구조로 바뀌어 왔다.

지난해 같은 경우는 90% 이상이 직접금융이었고 그 대부분은 주식발행을 통한 자금조달이었다.

미국 못지않은 직접금융중심 구조가 된 것이다.

그런데도 많은 기업들은 ''직접금융 방식의 자금조달을 한 기업으로서의 자세''를 망각하고 있다.

많은 투자전문기관들은 국민의 귀중한 금융자산을 이런 기업의 주식 또는 채권에 투자해 큰 손해를 보고 있다.

그리고 자신들의 노력 부족보다는 시장이나 기업 탓으로 돌리고 있다.

수많은 투신,투자자문,벤처캐피털사들은 투자전문기관으로서 해야 할 역할을 과연 얼마나 열심히 해 왔는가.

전문투자기관이 제 역할을 하고 있는 시장에서는 좋은 기업이 평가를 받고,나쁜 기업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

최근의 우리시장이 옥석을 구별 못하고 원칙 없이 움직이는 것은 전문투자기관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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