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념 재경부 장관은 향후 몇개월이 우리경제를 좌우할 것이라고 했다.

기업 금융 노동 공공부문 개혁을 두고 한 말이다.

과연 이것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우리경제는 자동적으로 성장동력을 갖출 것인가.

그러나 새로운 성장원천이 어디에서 나올 것인지를 생각해 보면 그렇게 낙관적이지 못하다는데 문제가 있다.

얼마전 정부는 과학기술기본법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것은 67년 과학기술진흥법과 97년 과학기술혁신특별법을 보완한 과학기술 모법이다.

그동안 민주당이 법률안을 주도하며 부처간 알력 등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결국 정부입법 형태로 귀결됐다.

그런데 다시 민주당 김희선 의원이 과학기술기본법 수정안 및 국가과학기술 연구개발사업법을 들고 나와 지난 토요일 공청회까지 열었다.

하지만 지금 정부나 민주당은 법체계의 정비를 논하기 전에 과학기술의 심각한 난맥상을 먼저 되돌아 봐야 한다.

정부예산의 5% 수준으로 높이겠다는 연구개발예산에서 핵심 근간인 연구소체계 하나만 봐도 그렇다.

현 정부가 출범하면서 정부출연 연구기관 등의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의거해 기존 연구소 체계를 완전히 뒤흔들었다.

가장 많이 생각해 가장 늦게 착수해도 될 과학기술 연구소들을 마치 개혁의 본보기로 삼듯이 "기초" "공공" "산업"이라는 세개의 연합이사회 체제에 편입시키고 이를 국무총리실로 이관시켰다.

부처 간섭을 배제하고 생산성을 올리자는게 명분이었다.

하지만 부처 간섭에서 벗어나기는 커녕 인사로비는 더 심해지고 정치적으로 얼룩졌다는 얘기도 들린다.

연구소 지배구조는 더욱 가관이다.

연구소 위에 연합이사회, 연합이사회 위에 국무총리실,국무총리실 위에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여기에 예전 소속 부처의 입김까지 뒤엉켜 세계적으로 가장 복잡한 연구소 지배 계열구조를 만들어 냈다.

그러자 조직확장 논리가 작용하기 시작했다.

연구소 경영주체도 아닌 어쩡쩡한 연합이사회는 존재이유를 부각시키는데 골몰하고, 과학기술에 문외한인 국무총리실은 새로운 심의관 직제를 만들었으며, 과학기술위원회는 국가연구개발사업의 조정 평가라는 "기술적 논리"에 매몰됐다.

또 존재이유가 불분명한 과학기술자문회의까지 목소리를 내고 있다.

부처간 정책마찰도 확대됐다.

산업구조와 과학기술 패러다임 변화를 도외시 한채 산업관련 부처들은 그대로 두고 과기처를 과기부로 격상시켰다.

이미 과학기술이 산자 정통 보건 등 각 부처에서 핵심 정책수단으로 등장한 상황에서 부처간 갈등의 폭만 커진 것이다.

게다가 연구소가 부처에서 분리돼 산업과 과학기술간의 연계도 약해졌다.

한마디로 정부조직은 그대로 둔채 독일식을 본떠 연합이사회를 도입하고,미국식을 본떠 국가과학기술위원회 등을 도입했지만,이들 국가가 갖는 효율성은 온데간데 없다.

정작 혁신원천을 창출해야 할 연구소는 더욱 왜소해졌고,행정 기획 조정 평가 등의 논리와 법적 논란만 무성한 게 현실이다.

새로운 성장동인을 찾아야 할 기업들은 구조조정에 휘말려 있다.

구조조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문제는 그 이후다.

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지배구조 소유구조 변화로 주주이익을 중시해야 할 기업들로선 단기적 승부를 강요받고 있다.

이렇게 기업들의"시간할인율"이 높아지면 기업연구소 역시 사업단위로서 단기적 연구개발에 치중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지금 대기업들은 장기적이고 도전적인 신사업 개척을 주저하고 있다.

정부가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벤처를 말하지만,이들도 근본적으로는 기술창출자가 아닌 기술활용자들이다.

그렇다면 신산업의 혁신 원천인 기초적 장기적 연구개발을 누군가는 해줘야 한다.

제대로 된 인력만이라도 양성해 주면 좋을 대학의 수준을 감안하면 정부연구소가 바로 그 역할을 맡아야 한다.

더욱이 환경 의료 자원 복지 등 공공기술분야에서 신산업이 계속 잉태되는 상황이고 보면 정부연구소 기능은 더욱 중요하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면 아무리 법을 정비하고 조직 기능을 새로 도입한들 소용없는 일이다.

미래의 성장원천을 기대한다면 선진국에 비해 너무나 왜소한 정부연구소들의 대형화(M&A) 전문화에 눈을 돌려야 한다.

그리고 현재의 연구소 지배구조와 행정체계도 전면 쇄신해야 한다.

/ 안현실 전문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