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이 다른 종교보다 많은 순교자를 낸 것은 철저한 배타적 진리관 때문이었다.

하지만 얼마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을 수 있다"고 천명해 세인들을 놀라게 했다.

가톨릭 신학자 칼 라너의 "다른 종교인들도 이름없는 그리스도인들"이라는 주장이나 개신교 신학자 폴 니터의 "예수 이름이 아니라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주장도 이미 새로운 학설이 아니다.

흔히 종교는 절대진리를 설파하고 있다고 해서 변화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종교의 이념적 측면만 보면 그렇지만 실제로 종교는 사회환경의 변화에 대응하거나 종교내적인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그 형태나 내용이 변하고 있다.

종교는 다른 문화현상처럼 정신적 산물이긴 해도 사회속에서 생겨나고 성장하며 변화와 소멸의 과정을 겪는 특정 목적집단이기 때문이다.

"진리는 오직 하나이고 그것은 우리 종교에만 있다"는 주장은 이제 설득력을 잃었다.

종교의 사회적 영향력도 옛날과는 달라졌다.

종교가 순수성을 고수하며 사회에 영향을 준다기보다는 사회의 영향을 받아 변모해 가는 종속적 위치로 전락해 가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종교의 다원화 세속화로 표현되는 현대사회의 특징적 현상이다.

한국가톨릭이 2백여년간의 우리 근현대사 과정에서 저지른 과오를 참회하는 공식 문건을 처음 내놓았다.

''쇄신과 화해''라는 제목의 참회문에는 황사영백서 병인양요 등 외세에 의존해 교회를 지키려했던 일,안중근의사 의거를 살인으로 규정했던 일 등을 구체적으로 거론하지는 않았으나 우회적으로 인정하고 용서를 구했다.

또 반공이데올로기 옹호,교회성장 지상주의,성직자 권위주의,타종교 이해노력 부족에 대한 포괄적인 반성도 들어있다.

내일 전국 성당에선 참회문에 따른 ''참회미사''를 올린다고 한다.

외부의 강제가 아닌 자유의지에 따라 자신의 행위를 죄로 간주할 때 가능한 것이 참회다.

"포괄적 추상적이며 비전이 없다"는 혹평도 나왔다지만 과거사에 대한 종교의 참회는 바람직한 일이다.

종교의 자기변혁과 실천을 다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