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15일 한반도를 울렸던 감동의 드라마가 석달 보름만에 서울과 평양에서 다시 펼쳐졌다.

금융시장 불안,대우·현대 사태,한전 노조의 파업 위기 등 우울한 사건들 속에서 오랜만에 가슴뭉클한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이산가족들은 30일 한없이 기쁨과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1백세의 나이에 시원치 않은 청력을 가진 유두희 할머니는 북의 아들 신동길씨의 말을 애써 들으며 눈시울을 붉혔다.

반세기 동안 애타게 망부가를 불렀던 유순이씨도 남편 김중현씨와 만나 주름이 깊게 팬 얼굴을 어루만지며 말문을 잇지 못했다.

북에서 내려온 동생 이용호씨를 만난 인호씨는 두 달전에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목놓아 불렀다.

그러나 이처럼 애틋한 드라마를 다시 보기까지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당초 10월께 2차 상봉이 계획돼 있었으나 뚜렷한 이유 없이 시일이 자꾸 지연됐다.

북측이 노동당 창건 기념일과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의 방문 등을 이유로 협상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남측도 속도를 조절하는 듯한 인상을 풍겼다.

게다가 장충식 대한적십자사 총재의 북한 비판 발언 파문으로 한때 이산가족 상봉이 아예 물건너가는 듯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다.

급기야 상봉 바로 전날인 29일에는 이산가족 상봉의 실무 업무를 책임지고 있는 한적의 장 총재가 돌연 일본으로 출국,''저자세'' 논란까지 일어났다.

작은 돌발 변수에 의해 언제라도 험로에 빠질 수 있는 남북관계의 특수성이 이산가족 상봉에서도 그대로 나타난 셈이다.

이날 50년의 한을 풀었던 이산가족들은 그나마 엄청나게 운이 좋은 경우다.

아직 남측에서 생사라도 확인하기를 바라며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이산가족이 10만여명이나 되기 때문이다.

사소한 이유로 수십년간 애타게 만남을 기다려왔던 이들의 가슴에 더이상 못을 박아서는 안된다는 게 국민들의 한결같은 소망이다.

이번 상봉이 이산가족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면회소 설치와 서신교환 등 제도화·정례화를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정부의 약속이 꼭 실현되기를 기대한다.

김남국 정치부 기자 n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