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노조는 왜 파업을 벌이겠다는 것인가.

산업자원부와 한국전력이 낸 광고만 보면 한전노조가 파업을 벌여야할 까닭은 도무지 없다.

"구조개편이 되더라도 한전종업원의 고용은 법으로 보장되므로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게 산자부와 한전측 주장이다.

더욱이 현재 추진하고 있는 전력산업 구조개편은 발전부문을 분할하자는 것일 뿐 민영화는 노조 등의 의견을 수렴한 후 경제여건에 따라 단계적으로 추진하겠다니,당장 노조가 파업을 벌여야할 절박한 이유가 없다.

그러나 좀더 곰곰이 생각해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구조개편후에도 과연 정리해고가 없다고 단언할 수 있을지,그렇다면 민영화 된 이후의 경영자는 어떤 방법으로 경영효율을 높일 수 있을지 의문스러운 대목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파업에 돌입하겠다는 한전노조측 주장이 타당하다는 얘기는 절대로 아니다.

현시점에서 한전노조가 파업에 들어간다면 국민들로부터 지탄을 받아 마땅하다.

구조조정에 한전만 예외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의 오랜 검토끝에 전력산업의 독점체제를 이대로 두는 것은 나라경제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결론이 내려진 만큼 한전 구조개편은 더이상 미룰 일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전 구조개편 문제는 정공법적으로 의연하게 추진하는 것이 옳다.

구조개편이 되더라도 고용감축은 없을 것이라는 등으로 얼렁뚱땅 넘어가려들 일이 아니다.

그런 얕은 수에 노조가 쉽게 넘어갈 리도 없고보면 더욱 그렇다.

산자부나 한전이 분할만 하고 보자, 본격적인 구조개편은 분할된 회사별로 알아서 할 일이고 그때까지 시간을 벌고 보자는 생각이라면 이 역시 온당하지 않다.

우선 넘어가고 보자는 식의 발상은 근본적으로 구조조정작업과는 걸맞지 않다.

최근들어 금감위와 금융노조간에 빚어지고 있는 해프닝도 그런 점에서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지난 7월 은행파업 때 어느 은행은 독자생존토록 하고 어느 은행은 지주회사로 묶겠다는 ''이면합의''가 있었던 만큼 이를 무시해선 안된다는게 금융노조측 주장인 모양이다.

반면 금감위측은 있지도 않은 이면합의가 무슨 말이냐며 정부측 서명이 있는 합의서가 있다면 공개하라고 되받고 있다.

어느 쪽 주장이 사실이고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는 시간이 가면 밝혀질 일이다.

문제의 7월의 은행파업때는 이용근 금감위원장(당시)이 노조위원장과 단독협상을 벌이며 ''금융기관에 대한 지시나 협조요청은 문서로 하겠다''는 것등을 약속,하루만에 파업을 끝내도록 했었다.

그러나 그 ''협상''에 대해서는 논란도 없지않았다.

금감위원장이 과연 노조와의 협상대상자로 적격이냐,은행장들을 왜소화시켜 앞으로 두고두고 후유증을 남기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제기됐었다.

또 정책사항에 대한 노조와의 합의서 작성에 대해서도 시각에 따라 비판론이 없지 않았다.

중요하고 복잡한 사안을 기교로 해결하려드는 행정은 온당치 않다.

결국 문제를 이월시키는 것이고 더 복잡하게 꼬이도록 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이렇게도 볼 수 있고 저렇게도 해석할 수 있는 교묘한 말로 우선 넘기고 보자는 식이어서는 구조조정작업에 진전을 가져올 수 없을 것 또한 자명하다.

외국에서 한국의 구조조정은 말만 많지 제대로 이루어지는게 없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 까닭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해야할 수술이라면 가능한한 앞당기는 것이 오히려 고통을 줄이게 마련이다.

''점진적''''단계적''''충분한 사전준비''라는 말들도 구조조정과 관련,자주 등장하는 어휘들이다.

그러나 이런 표현은 외견상 그럴듯 하지만 대체로 일을 미루기 위한 의도를 깔고있다고 봐도 큰 잘못이 아니다.

다소 성질은 다르지만, 의약분업이 준비기간이 짧았기 때문에 그렇게 진통이 컸다고 보긴 어렵다.

구조조정을 통한 고용감축은 더욱 그런 측면이 두드러진다.

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다는 판단이 내려졌다면 더이상 머뭇거리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어차피 고통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면 그럴 수밖에 없다는 점을 설득시키려고 노력하면서 강력히 밀고 나가는 것외에 방법이 없다.

그것이 정공법이자 정직하고 책임있는 행위다.

< 본사 논설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