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홍상화

"저기 앞쪽을 봐요. 치타가 가요"

앞쪽에서 이혜정의 목소리가 들렸다.

트럭 짐칸에 탄 진성구를 비롯한 네 남자는 시선을 앞쪽으로 보냈다.

트럭이 달리는 흙도로 옆으로 네 마리의 치타가 어슬렁어슬렁 걸어가고 있었다.

몸 크기로 보아 한 마리는 어미이고 세 마리는 새끼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지금 사냥하러 가는 길이에요"

키쿠유족 흑인 안내원이 영어로 말했다.

"어떻게 알아요?"

진성구가 물었다.

"어미의 배를 보세요. 훌쭉하잖아요.

배가 고픈 거예요"

진성구의 시선이 치타 가족에 머물고 있었다.

자태의 우아함에 있어서는 어느 동물과도 비견할 수 없었다.

그들이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동물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치타 가족 주위의 초원에는 마른 잡초 넝쿨이 바람에 날려 여기저기 흩어져 뒹굴고 있었고,저 멀리서는 나뭇가지가 수평으로 뻗은 가시나무가 이곳저곳 서 있었다.

더 멀리 시선을 옮기자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높은 킬리만자로의 산봉우리가 흰눈에 싸여 햇빛을 의젓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약육강식이 철저히 지배하는 이 아프리카 초원에서 어떻게 동물들끼리 살아나가지?"

진성구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했다.

"한 가지,딱 한 가지 원칙을 동물들이 지키기 때문이야.자기가 죽인 것은 자기나 자기 가족이 다 먹어치워야 해.절대로 남기면 안 되지.그것이 아프리카 초원을 지배하는 절체절명의 원칙이야"

그것은 진실이다,라고 진성구는 한없이 펼쳐진 아프리카 초원에 시선을 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인간사회도 동물사회처럼 자기가 번 것을 죽기 전에 반드시 다 써야 한다는 간단한 원칙을 지킨다면 인간끼리 서로 죽고 죽이는 일은 있어도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으리라고 진성구는 결론지었다.

그 순간 그는 평생 동안 죽어라 하고 써도 다 쓰지 못하고 남길 재물을 소유하고 있음에도 더 큰 재물을 모으려고 자기 자신을 죽이고 경쟁자를 죽이며 사랑하는 가족과 우정을 희생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7년 전 사업을 떠난 자신에게 박수를 보냈다.

만약 그때 사업을 떠나지 않고 계속 몸담고 있었다면 지금쯤 자신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떠올렸다.

지난밤 과음으로 불편했던 잠자리에서 새벽 동트기 전 일어나 가족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은 채 집을 떠나는 자신…회사에 도착하자마자 참석하는 연속된 회의들…회의중 그를 지배하는 숫자들…외형,이익,투자,임금 등 숫자의 광란 속에 보내다가 점심때가 되면 사업에 필요한 사람을 만나 거짓과 위선으로 시간을 때운 후…오후에 들어서면서 좀 한가해질 수 있는 시간이 되면 오히려 불안해져 또다시 급히 일을 만들어야 하고…저녁이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마음에 내키지 않은 사람들과의 만남 그리고 벌어지는 절제 없는 술판…그런 과정에서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은 점점 멀어져 갈 수밖에 없고,오직 보이는 것은 물리쳐야 할 경쟁자뿐이고 느끼는 것은 가상의 적으로부터 위협뿐일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