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영화에는 부성애를 다룬 것들이 많다.

"챔프"의 복서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오래전에 떠난 링에 다시 서는 모험을 감행한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의 경찰관아빠는 병원 실수로 불치병에 걸렸다는 신체검사 결과가 나오자 업무중 사망해 자식들에게 보상금과 보험료를 남겨주려 온갖 위험을 무릅쓴다.

"미세스 다웃파이어"의 로빈 윌리엄스는 경제적 무능때문에 이혼당하자 옛아내의 집에 가정부로 취직해 아이들을 보살핀다.

"솔드아웃"의 슈왈츠제네거는 아들의 크리스마스선물용 장난감을 구하려 온몸을 던진다.

"아마겟돈"의 브루스 윌리스는 딸을 위해 사위감 대신 죽는다.

그런가 하면 몇년전 선풍을 일으킨 국내소설 "아버지"는 사랑 표현에 서툰 한국 아버지의 실상을 보여준다.

50대 가장 한정수는 직장생활에 쫓겨 아이들의 입학 졸업식에 한번 못가고 늘상 밤늦게 귀가했으면서도 막상 뾰족하게 출세도 못하고 그 결과 아내와 자식들로부터 우습게 여겨진다.

그런데도 죽음 앞에 이르자 남겨질 가족만을 생각하는 외로운 처지는 일상에 지쳐 푸석푸석해진 이땅 중년남성들에게 "바로 내모습"이라는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안가리는 아버지의 사랑엔 이처럼 동서양이 따로 없다.

어떻게 보면 요란스럽게 티를 내는 서양식보다 우리식 사랑이 더욱 깊은 것일지도 모른다.

실제 우리 아버지들은 자식이라면 꼼짝 못하는 경향이 짙다.

밖에선 상당한 권위와 공정성을 내세우는 아버지도 자식일에는 눈 딱감는 수가 적지 않다.

때로 분통이 터져 고개를 저었다가도 금방 누그러뜨린다.

자신은 빈지갑에 쪼들리면서도 자식을 위해선 깡그리 내주기 일쑤다.

세상이 변한 탓인가.

며칠 사이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를 되돌아보게 하는 기사가 세건이나 났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줬던 교육비와 결혼자금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냈다 패소하고,후처와 함께 어린자식을 학대한 아버지에게 실형이 선고되고,계속 말썽을 부려온 부잣집 장남에게 가족들이 변호인을 안구해줬다는 것이다.

속사정이야 어떻든 아버지가 아들에게 준 돈을 받으려 부당이득금및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는 건 낯설고 서글프고,어린자식을 죽게 만든 아버지의 철면피함엔 숨이 멎는다.

서른살이 넘도록 고약한 버릇을 못고친 건 자식을 너무 애지중지한 탓이 아닐까 싶어 입맛이 쓰다.

소유보다 관계가 더 중요한 게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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