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애 < 건축가 / (주)서울포럼 대표 >

"정부는 무슨 일을 하는지 확실해,법원도 분명한 것 같아,그런데 국회는 왜 꼭 필요한지 모르겠어…" 사회과목을 배우는 어린 딸의 의문이다.

삼권 분립의 원칙,국민 대변의 간접 민주주의,법치주의를 설명해 주어도 딸은 여전히 머리를 갸우뚱한다.

그도 이해된다.

나 역시 몇십년 전 똑같은 의문을 가졌었기 때문이다.

국회는 별로 하는 일이 없어 보였고 그런 것치고는 너무 주목을 받고 항상 시끄러워 보였었다.

몇십년 전이나 지금이나 정직하고 순수한 눈으로 보면 여전히 하는 일이 없어 보이고 시끄럽기는 마찬가지인 국회의 존재,우리의 민주주의가 진정 꽃피우기는 아직 멀었다.

''제발 열려만 다오''라고 기대했던 때가 불과 한달여 전이다.

국회가 열리면 그나마 꼬인 정치가 풀리고 긴요한 법안들이 심의되고 예산이 정해질 뿐 아니라 열띠게 민생을 논의하는 선량의 모습만으로도 경제불안심리를 덜어줄 줄 알았다.

국정감사만 열리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송곳 폭로 질타'' 기사들을 보면서 ''송곳보다는 호미가 차라리 나을텐데,단발성 폭로보다는 지속적인 지적이 나을텐데,질타보다는 제안이 나을텐데…''하는 생각이 들어도 넘어갔다.

그게 그거인 질문 발언만 지루하게 반복하면서 답변은 들을 생각도 없고,국정현안과 관련없는 정치성 질의나 하는 국회의원 모습이 보여도 대충 넘어가기로 했었다.

국회를 열어준 것만 해도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러더니 또 도로아미타불이다.

당장 걸린 사안이야 검찰 탄핵이지만 그 바탕은 자존심 싸움과 기 싸움 아닌가.

도대체 지켜야 할 자존심과 기의 실체가 무엇인지도 모르겠거니와 지금의 경제 사태,민생 상황이 도대체 국회를 공전시킬 수 있는 상황인가.

탄핵은 왜 그렇게 꼭 막아야 하며 탄핵은 왜 꼭 관철시켜야 하나.

이것 아니면 저것인 사안에 여야가 그렇게 목숨 줄을 건 것처럼 싸운다면 언제 머리 맞대고 민생 사안을 고민할 것인가.

하기야 국회 방망이는 언제나 내리쳐졌었다.

예산심의가 통과되지 않은 적도 없고,꼭 필요한 법률이라면 무더기로 마지막 순간에 방망이를 쳤다.

그 와중에 국가의 실리적 사안들이 어떻게 대충 결정되든,나라가 어떻게 곪아가든,국민이 어떻게 고통을 당하든 어차피 국회가 책임질 것도 아니니 말이다.

그러니까 ''국회의원과 정당을 위한 국회''는 정치공방에 99%의 에너지를 쓰고,국사는 들러리 식으로 적당히 봐도 대충 넘어가는 것 아니겠는가.

우리 나라의 국회의원은 정말 희한한 직업이다.

법적 의무를 수행하기 위한 법적 특권을 논하지 않더라도,국회의원은 어떤 직업인들도 누리지 못하는 특권을 누리고 있는 셈이다.

우선 국회의원은 공식석상에서 욕설과 삿대질과 몸싸움을 공개적으로 할 수 있는 유일한 직업이라는 것.둘째,그런 모습이 온 국민 앞에 비쳐도 괘념치 않고 또 다시 근엄하게 국가적 소명과 역사적 과업을 과시할 수 있다는 것.셋째,꾸벅꾸벅 자는 낮잠이든,담요 쓰고 자는 밤잠이든,공공장소에서 버젓이 자는 모습을 만인에게 보일 수 있다는 것.넷째,''내 탓''이 아니라 ''네 탓''이라고 비방할 수 있는 상대가 언제나 뚜렷한 것.

엄청난 특권이 아닐 수 없다.

어느 한국 사람이 이런 특권을 누릴 것인가.

어느 직업이 이런 특권을 누릴 것인가.

국민의 존경을 절대로 받지 못하는 직업이면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되고 싶어하는 국회의원.국민들이 그렇게 욕을 하면서도 또 여전히 기대를 버릴래야 버릴 수 없는 국회.희망을 걸려 하면 절망을 주는 국회. 그 존재의 필요성을 의문하면서도 여전히 튼튼한 존재의 필요성을 희망할 수밖에 없는 국회. 참 국회는 딜레마적인 존재다.

정말 묻고 싶다.

국회의원은 자신의 자식과 손자에게 국회의 존재이유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을까.

그들의 자손들은 국회의 존재이유에 대해서 과연 수긍하고 있을까.

국회의원 자신들은 그들의 자식과 손자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고 자신할까.

부디 국회 본연의 일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