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꼭 3년전 우리국민들과 최고통치자는 부끄럽기 짝이 없는 하루를 맞이했다.

1997년 11월 22일 아침에 배달된 신문들의 1면 톱 기사는 ''IMF 구제금융 요청''이었다.

그전날 밤 늦게 정책변경이 발표됐기에 많은 사람들은 조간을 보고서야 그 내용을 알 수 있었다.

IMF의 도움없이도 위기 해결이 가능하다는 신임 부총리의 공언(公言)이 불과 이틀만에 공언(空言)으로 바뀌는 장면을 읽게 된 국민들의 가슴은 허탈감과 수치심,그리고 불안감과 분노로 뒤엉킬 수밖에 없었다.

그날 오전 10시부터는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경제난국 극복을 위한 대국민 특별담화문'' 발표가 TV와 라디오로 생중계됐다.

APEC 정상회담을 위해 캐나다 밴쿠버로 출발하기에 앞서 평소와는 달리 안경을 끼고 원고를 읽어나가는 대통령의 모습은 무력하고 초라해 보였다.

그날 이후 우리 국민들이 겪은 고초는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이런 악몽의 날은 우리의 기억에서 아련히 멀어져 갔으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우리는 3년이 지난 지금 위기가 다시 찾아올 것 같은 불안감에서 과거의 부끄러운 날들을 되새겨 보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그동안의 뼈를 깎는 노력과 실물지표의 그럴듯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황량했던 원점으로 되돌아 간 것처럼 느끼는 것은 정부의 개혁노력이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하겠다.

개혁이란 외형만 바꾼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속의 내용이 바뀌고 관행이 바뀌어야 하는 일인데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달리 표현한다면 개혁은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의 지적대로 부실자산(bad loans)과 못된 관행(bad habits)을 함께 정리해야 하는 일이다.

공적자금을 쏟아붓고 국내자산을 헐값에 외국인한테 팔아 BIS비율과 부채비율은 목표대로 맞추었는지 모르지만 그전의 못된 관행은 아직 고치지 못했던 것이다.

정부가 개혁의 대상으로 삼은 4대부문 어디를 보더라도 그런 점이 눈에 띈다.

지금도 민생문제는 외면한 채 파국속에서 정쟁을 일삼고 있는 정치인들의 어디가 과거와 달라졌는가? 3년전 금융개혁법 심의를 팽개쳤던 그 사람들이 이제는 공적자금문제와 예산심의를 접어두고 힘겨루기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권력형 비리, 눈치보는 사정기관, 새모습으로 둔갑한 관치금융, 비효율의 온상인 공기업 등 모두가 옛모습 그대로이다.

금융이나 기업들도 회사 숫자나 좀 줄어들었고 부실여신이나 부채규모가 작아졌다는 점만 달라졌지 장사하는 방식은 과거와 다를 바가 없다보니 경쟁력은 제자리걸음이다.

노사관계에 있어서의 잘못된 관행이나 노동시장의 경직성도 고쳐진 데를 찾아내기 어려운 실정이다.

강성 노조들의 힘 시위에 밀려 공기업민영화나 금융과 기업의 구조조정을 외치는 정부의 목소리는 죽어 들어가고만 있다.

지금과 같은 난국에서 국민들의 불신감과 불안감을 씻어주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IMF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따위의 얘기가 통할 때가 아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그의 전임자가 범했던 실수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새로운 각오로 개혁을 시도할 때에만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 실수라는 것은 첫째 사심을 가진 측근들의 비리가 결국 최고통치자의 도덕성과 통치력에 손상을 가져왔다는 점이다.

그렇게 되니 대통령은 개혁을 추진할 만한 힘을 잃게 됐고 레임덕 현상이 일찍부터 시작됐던 것이다.

둘째 김영삼 전 대통령이 대국민담화에서도 밝혔듯이 기득권집단의 반발을 우려해 개혁을 주저하다보니 위기를 자초했다는 점이다.

지금 대통령의 측근이나 실세에 관해서도 그동안 좋지 않은 소문들이 나돌았다.

그런가 하면 노조를 비롯한 이익단체들은 여차하면 실력행사에 들어갈 태세다.

사실 정부가 이런 단체들에 대해 정공법으로 대응할 생각이 없다면 개혁은 처음부터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될 것이다.

공연한 혼란과 낭비로 국민들의 고통과 부담만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측근과 기득권집단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 나가느냐에 따라 우리가 또 다른 악몽의 날을 맞이할 지 아닐 지가 결정될 것이다.

< 본사 주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