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효종 < 서울대 정치학 교수 >

제43대 미국 대통령선거가 실시된지 2 주일이 다 됐지만 당선자를 결정하지 못하는 이변이 지속되고 있다.

세계 민주주의의 보루로 자처해 오며 문제가 있을 때마다 해외에 선거감시단을 파견해온 미국에서 야기된 사상 초유의 재검표 사태는 미국인들 자신은 물론,전세계를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미국의 대통령선거 방식은 간선제인 ''선거인단제도''다.

선거일 유권자들은 각 대선후보가 내세운 선거인단을 선출한다.

1787년에 시작된 이 선거인단 제도는 중요한 정치철학과 역사적인 이유를 내포하고 있었다.

미국헌법을 창시한 ''건국의 아버지들''은 대통령을 뽑는데 있어 각주의 주권이 약화되는 사태를 원치 않는 한편 시민들의 직접선거에 의해 대통령이 선출된다는 점에 상당한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선거인단제도의 약점은 뚜렷하다.

한 후보가 압도적 표차로 상대방을 누를 경우에는 별 문제가 없지만,이번처럼 박빙의 승부일 때,유권자의 뜻을 가늠하기가 어렵다.

특히 득표수에서는 이기고 선거인단수에서는 지게 되는 ''억울한'' 후보의 출현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또 큰 주(州) 유권자와 작은 주 유권자 표의 크기가 같지 않다는 점에서 표의 비등가성 문제도 야기하고 있다.

유권자의 뜻을 엄정하게 반영하는 것이 선거제도의 목표다.

하지만 과연 ''어느 정도로'' 완벽하게 그 목표를 실현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하나의 도전이다.

한국에서는 대통령을 직선제로 뽑고 있어 미국의 선거인단제도보다 유권자의 뜻을 반영하는데 용이하다고 말할 수 있는 측면이 있지만,''절대적 다수결제''보다 ''상대적 다수결제''를 택하고 있어 과반수 유권자들이 찬성하지 않는,소수파 대통령이 속출한다는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결국 ''선거인단제도''의 불완전성은 절차민주주의의 불완전성의 한 사례에 불과한 것이지,유독 선거인단제도 만이 전근대적인 제도의 전형이라고 비난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놀라운 사실은 그와 같이 불완전한 제도가 2백년간이나 유지되어 왔고,이번에야 비로소 그 불완전성이 극적으로 드러나게 되었다는 점이다.

미국 선거사상 유례없이 수(手)작업으로 재검표가 실시되고 있는 상황에서,고어와 부시진영이 한치의 양보없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그 결말이 어떻게 날 것인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지루한 법적 공방이나 선거소송으로 갈 수도 있고,정치적 타협이 이루어질 가능성도 있다.

''승자가 이기는 상황보다는,패자가 승복하는 상황''이 더욱 더 중요해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 상황은 유동적이다.

양 진영 모두 일진일퇴를 거듭하며 1급 율사들을 동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민주제도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선 양식을 가진 정치인들과 시민들의 행동과 선택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반증하고 있다는 점에서 하나의 교훈적인 역설이 아닐 수 없다.

플로리다주에서 재검표사태는 일어났지만,투표함 점거나 농성·과격시위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민주·공화 각 당이 파견한 변호사들도 상대방에 대하여 공격적인 수사를 동원할지언정,품위를 지키고 있다.

플로리다 사태가 한국 민주주의에 있어 지니고 있는 함의는 명백하다.

한국 선거제도도 결코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법적 선거비용을 엄격하게 규정해도 후보자들은 이 금액을 초과한다.

더구나 과반수의 지지를 획득하지 못한 소수파 대통령이 선출되기 일쑤다.

우리는 현재 미국 대선의 혼미상황을 바라보고 있지만,국내 정치사정도 한가롭지 않다.

권력층을 중심으로 하여 불거지는 부정부패의혹,말과 행동이 다른 정치인,끊임없이 계속되는 여야대치,지역주의의 악순환 등이 우리 민주정치의 현주소다.

이것이야말로 고어와 부시를 바라보면서 일단의 양식있는 판단과 결단을 내려 줄 것을 기대하는 미국 언론의 바람과, 한국 정치인들을 바라보면서 양식있는 판단에 입각하여 품위있게 행동해 줄 것을 기대하는 우리의 소망이 크게 다르지 않은 이유인 셈이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