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불공정무역행위 조사 및 산업피해 구제에 관한 법률 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확정되면 우리나라 무역위원회는 출범한지 13년만에 산업피해구제에 관한 독립된 법체계를 갖추게 된다.

WTO의 출범과 함께 관세율은 낮아진다.

공산품은 물론 농산물·지식재산권까지 개방되는 추세를 감안해도 그렇지만 그동안 산업피해 관련 규정이 관세법·대외무역법 등에 분산적으로 규정돼 제도 발전은 물론 관련 기업 등 민원인의 불편이 컸다는 점에서 보면 의미있는 일이다.

산업피해구제제도는 미국의 슈퍼 301조와 같이 자국법에 의한 일방적 조치가 아니라 WTO 규범에 근거한 것이다.

무역개방 체제하에서 외국의 불공정 수출공세 등으로부터 국내산업을 보호하고 공정경쟁 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것으로 미국 EU 등 선진국은 물론 개도국들도 활용하는 제도다.

외국의 덤핑수출에 대응한 ''반덤핑관세제도'',외국의 수출보조금 지급에 대응한 ''상계관세제도'',수입급증에 따른 국내산업의 피해에 대응한 ''세이프가드제도'',지식재산권 위반 수출입,원산지 표시 위반,기타 수출입 질서 저해에 대응한 ''불공정무역행위 규제''등이 모두 이에 해당한다.

이번에 제정된 산업피해구제법은 과거와 다른 몇가지 주목되는 사항들이 있다.

지식재산권 침해 물품과 같은 불공정 수출입행위 금지대상이 무역업자의 수출입 단계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국내 판매행위와 수출을 위한 제조행위로까지 확대됐다.

올해들어 무역업이 무신고 자유업이 되면서 무역업자로 한정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점과 함께 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한다는 측면을 고려한 때문이다.

또 불공정 무역행위로 인해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받거나 받을 우려가 있는 경우 통관배제 명령·유통중지 명령 등 잠정조치와 함께 신청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담보제도를 도입한 것도 눈길을 끈다.

WTO/TRIPs의 권고사항이기도 하지만 특히 잠정조치의 경우 무역거래의 특성상 거래가 이미 완료된 경우 원상회복 등이 사실상 어렵다는 점에서 보면 실효성 있는 조치다.

그리고 불공정 무역행위에 대한 과징금 부과수준을 공정거래법 수준으로 조정한 것도 무역거래 규모가 크게 증가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통상마찰의 가능성이 큰 세이프가드 제도의 신중한 운용을 위해 조사개시 결정과 구제조치의 확정 및 시행단계에서 관계부처와의 협의를 의무화한 것도 눈길을 끈다.

지난번 중국산 마늘로 인한 한ㆍ중분쟁을 상기해 보면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앞으로 관련산업,소비자 이익,통상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전략적으로 접근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이외에 산업피해 발생이 예상되는 산업에 대한 무역동향 및 산업경쟁력 조사분석 등 산업경쟁력 영향조사사업의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도 주목된다.

산업피해 구제조치가 사후적 조치인데다 시간을 벌어주는 잠정적 조치라는 점에서 보면 사전 대응기능도 강화하겠다는 의도다.

사실 미국 ITC(국제무역위원회)의 경우만 해도 5대목표 중 3가지가 조사분석 및 무역정책 지원일 정도로 사전기능이 중요시된다.

물론 이번 법률안에 아쉬운 대목이 없는 것도 아니다.

예컨대 국민의 편의와 규범의 체계성 관점에서 관세법에 규정돼 있는 덤핑 및 보조금으로 인한 산업피해조사 규정도 이번에 제정된 법률에 독립적이고 체계적으로 수용하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인용입법 형태로 그치고 말았다.

현행 관세법 체계와 정부조직법에 따른 부처간 업무 관할때문인 것으로 보이지만 향후 검토해 볼 만한 사안이다.

또 이번 법률안에 무역위원회 위원자격 강화가 포함됐지만 이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현재의 무역위원회 조직과 인원으로는 이 법이 제대로 기능할 수 없다는 말이다.

현재 무역위원회에 9명의 위원이 있지만 위원장을 포함해 8명이 비상임이고 조사실도 50명에 불과하다.

굳이 선진국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독립된 법에 따른 변화된 법적 지위와 선진화된 산업피해 구제제도의 운용을 위해서는 이에 상응하는 조직과 인프라 확충이 긴요하다.

안현실 전문위원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