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 빈발 지역은 인간이 감지 못해서 그렇지 1년 3백65일 지진이 발생한다고 한다.

환태평양 지진지대에 위치한 미국 샌프란시스코는 아름다운 항구도시지만 지진에 노출돼있다.

역시 미항인 캐나다 밴쿠버도 도심에 내진설계 건축구조물이 즐비하다.

리히터 스케일에 잡히는 크고작은 지진이 연평균 2백회가 넘는다.

때문에 그 곳 주민에게 지진발생여부를 묻는 건 따분한 질문으로 들릴 게다.

한반도가 지질학적으로 지진안전지대라는 것은 상대적 개념일 뿐이다.

경제적으로도 그렇다.

크고 작은 위기로 점철된 지난 반세기 경제성장과정이 이를 말해준다.

그 중 강도 높았던 예가 97년 이맘 때 분출한 외환위기였다.

재발가능성여부는 한가롭고 ''썰렁한 질문''이다.

위기이후 국민경제 각 부문에 내진설비가 제대로 갖춰졌는지 점검하는 것은 ''알찬 질문''이다.

놀라운 건 환란 이후 지금까지 각 부문의 위기대비가 여전히 허술하다는 사실이다.

환란 당시 문제기업이었던 기아·한보를 압도하는 규모의 현대건설과 계열사들이 현재 위기의 벼랑에 몰리고 있다.

대우자동차 부도이후 실업자가 늘어나며 양대 노동단체가 경쟁적으로 총파업을 위협하고 있다.

부실기업에 돈을 많이 떼인 은행들이 2차 구조조정의 압박을 받고 있다.

일시 흥청대던 가계 소비심리가 급랭하고 있다.

1년전 쯤 일찌감치 환란극복을 졸속 선언하고 대북관계개선에 국정 우선순위를 두어 오던 정부가 근래에야 경제위기 실체를 감지하고 있는 듯하다.

최근 금융시장의 신용경색은 3년전보다 심각하다.

회사채 기업어음 등이 유통이 잘 안돼 기업들의 돈가뭄 현상은 그 유례가 없을 정도다.

만기도래물이 연말까지 20조원에 가깝다.

수익성 좇아 은행권을 떠났던 돈이 다시 안정성을 찾아 되돌아와 예수금은 늘어도,은행은 BIS(자기자본비율)제고 때문에 위험가중치 낮은 국공채 매입을 선호하며 기업대출은 기피한다.

2차 금융구조조정은 은행의 부실자산을 털어 건전한 은행으로 만드는데 있다 한다.

이에 소요되는 공적자금 승인안건이 국회에 계류중이다.

경제위기에 대한 공동책임의식을 통감하고 여야가 신속히 통과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1차 공적자금의 사용 적정성 여부를 규명하는 일을 별도의 과제로 합의한 건 잘된 일이다.

그러나 현대건설 등 대규모 부실발생가능성을 감안하면 공적자금 소요규모를 2배 이상 높여 잡았어야 한다.

공적자금의 여력 그 자체가 직접적으로 시장신뢰 회복에,간접적으로 추가 부실발생 예방에 이바지할수 있다.

공적자금이 궁극엔 국민의 조세부담으로 귀착된다는 점에 비춰 부실은행의 임금인상,퇴직금 혜택 등에 제동을 거는 등 강도 높은 경영개선 자구노력을 요구하는 건 당연하다.

금융지주회사제도를 부실은행정리의 기본틀로 설정한 논리와 경위가 분명치 않다.

우량은행이 부실은행의 자산과 부채를 선별 인수해 합병하는 이른바 P&A방식이 가장 실효성이 높을 것으로 평가된다.

지난 초여름 일부 은행노조파업 때 노사정위원회 합의내용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

부실은행 부실종금 부실생보를 하나의 거대한 금융지주회사 체제에 통합하는 방식은 실효성이 가장 떨어진다.

경제순환의 혈압은 은행의 신용공급량에 의해 조절된다.

이 막중한 기능을 담당하는 은행들이 여전히 응급수술대 위에 누워있다.

공적자금 수혈로 일단 위기국면을 벗어나도록 하고,관치금융근절과 내부경영 합리화로 은행체질 강화에 힘써야 한다.

여수신 금리의 실질적 자율화로 은행이 적절한 예대금리마진(4%포인트 내외)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은행에 또 공적자금을 수혈하는 사태를 예방할 수 있다.

앞으로 상당기간 은행의 수익기반을 튼튼히 만들어 주어야 국민조세부담에 의한 은행 살리기가 불필요해질 것이다.

한때 대통령의 입까지 빌려 예대마진축소를 요구,은행부실 심화에 일조한 어느 관료의 단견과 우매를 우리는 기억한다.

''이번이 금융부문의 마지막 대수술일 수 있을까'' 이것이 우리의 걱정이다.

11월의 음산한 날씨가 3년전 IMF 자금지원을 요청해야 했던 암울한 기억을 되살리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