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초 우리나라를 방문했던 하버드대 제프리 삭스 교수는 "지난 98년 외채만기협상때 외국인투자자에게도 손실을 볼 것을 요구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랬더라면 외채상환부담을 아마도 1백억∼2백억달러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게 그의 주장이었다.

차입금 금리를 낮추거나 원금을 일부 탕감받은 다른 나라의 외채만기 재조정협상 선례에도 불구하고,최고 2.75%를 더 얹어주며 만기연장에만 급급했던 지난 98년초의 외채협상을 되새기면 씁쓸하다.

과연 1백억∼2백억달러를 줄일 수 있었을지 단정하기는 어렵지만,어쨌든 구경꾼이라고 할 외국인 교수로부터 그런 지적을 받는 기분은 이래저래 좋지만은 않다.

지나고보면 항상 후회가 뒤따르게 마련인 것이 세상사지만,지난 3년간을 되돌아보면 정말 그런 일이 한둘이 아니다.

참 잘된 것처럼 여겨졌던 것들중에도 지금와서 보면 그렇게 할 일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드는 사안들도 없지 않다.

그런 것중 하나가 노사정위다.

IMF사태로 실업대란이 필지(必至)였던 상황에서 파열음을 최소화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기구가 긴요했기 때문에 노사정위 출범은 기대를 모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저간의 흐름을 되돌아보면 노사정위의 실효성에 대한 회의를 떨쳐버리기 어렵다.

IMF직후의 대량 실업사태에서 마찰이나 갈등이 그 정도로 그친게 과연 노사정위 때문이었는지도 의문이지만,최근들어서는 노사정위 그 자체가 또하나의 갈등요인이 되고있는듯한 감조차 없지않기 때문에 특히 그러하다.

민노총에 이어 한국노총 마저 노사정위 참여를 거부하겠다고 나서고 있는 것도 그런 측면이 있다.

계층간 집단간 갈등의 조정은 본질적으로 정치의 영역이다.

노동관계법은 노사정합의로,의약관계법은 의약정협상에서 논의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국회 입법과정에서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들으면 그만이지 이해가 충돌하는 집단간 합의가 제도개편의 전제조건이어야 할 까닭이 없다.

그런데도 왜 정부는 이른바 의약정합의라는 걸 끌어내기 위해 그토록 고심해야 했을까.

그런 상황이 빚어진데 대한 결정적인 책임은 두말할 것도 없이 정부에 있다.

이쪽 집단의 눈치,저쪽의 표정을 살피는 정책과 행정이 아니라면 노사정 의약정에 그토록 매달릴 이유가 없다.

만사가 표계산과 이어지기 때문에 이런 꼴이 나왔다고도 볼수 있다.

이런 비난은 야당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는 점 또한 분명하다.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국회 대표연설만 보더라도 그러하다.

이 총재는 현정부를 강도높게 비판했다.

"나라가 무너지고 있다"고 말했다.

경제가 말이 아닌 국면이고 보면 당연히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본다.

그러나 이 총재의 연설중 특정집단에 관한 대목을 모아보면 재미있는 점이 있다.

그는 노동정책도 원칙이 있어야한다는 점을 강조했지만,그 원칙이 무엇인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주5일근무제 실시방안등 노사간 첨예한 대립을 보이는 문제에 대한 한나라당의 입장이 무엇인지도 밝히지 않았다.

부실기업은 신속하고 과감하게 정리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그 종업원정리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자세를 분명히 했다.

최근 2년사이에 농가빚이 크게 늘었다고 지적하면서 농어민부채탕감을 약속한 이 정권이 농어민을 울리고 있다고 비판했으나 "내년도 농어촌예산이 거의 동결된 것도 문제"라는 말외에 달리 대책 제시는 없었다.

대안도 없이 강경한 어휘만 나열된 야당대표의 연설은 공허할 따름이다.

설혹 그 진단이 옳다고 하더라도 마치 구경꾼의 평론처럼 들린다면 그 또한 문제다. 현실경제에 대한 야당의 책임은 절대로 없을 수 없다. 더욱이 집권경험을 가진 원내 제1당이라면 그렇다.

야당도 지난 3년을 되돌아보고 스스로 책임을 느끼는 것이 옳다.

이 총재의 표현대로 정부가 원칙을 세워야할 일까지 정치협상을 하는 곳이 돼버린 노사정위 같은 곳이 왜 자꾸 생겨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그런 것들이 경제를 어렵게 만든다면 국회,야당의 책임은 결코 정부보다 못하지 않다.

< 본사 논설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