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기업들을 중심으로 ''제4세대 연구개발론''이 확산되고 있다.

최근 삼성종합기술원 초청으로 방한한 윌리엄 밀러 교수(제4세대 연구개발론 주창자의 한사람)는 IBM 인텔 시스코 마이크로소프트를 비롯한 많은 미국 기업들이 이 개념을 도입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들 기업들이 제4세대 연구개발론에 기초해 새로운 지배적 제품(dominant design)의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면서 한국 기업들도 세계를 무대로 경쟁하려면 이런 흐름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 제4세대 연구개발론은 어떻게 나왔는가.

제1세대 연구개발론은 ''희망의 전략(Strategy of Hope)''으로 불린다.

컴컴한 방에 몇몇 자질이 뛰어난 사람을 집어넣고,돈을 쏟아부은 뒤 희망을 갖고 기다린다는 것이다.

이는 20세기 초반에서 50년대까지 유행하던 일반적인 연구개발 관리방식이다.

연구개발은 단지 예산상 하나의 비용항목에 불과했으며 조직에서 고립된 채 추진됐던 것이다.

하지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이 방식은 오래갈 수 없었다.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국방부문의 프로젝트 관리방식에 기업들이 주목하기 시작했다.

기업들은 개별 연구개발 프로젝트의 비용과 이익을 계량적으로 측정하려고 노력했고,프로젝트의 목표에 비추어 진도를 점검했다.

이는 과거에 비해 체계적이고 사업요구에 보다 부합할 수 있는 관리방식이었다.

이것이 바로 제2세대 연구개발론이다.

그런데 이 역시 한계가 있었다.

개별 프로젝트에 대한 지나친 몰입은 ''나무는 보되 숲을 못보는'' 위험을 초래했다.

더구나 70년대 후반 ''연구에 이겨도 개발에 뒤지는'' 기현상은 미국 기업들의 반성을 불러일으켰다.

이것은 1991년에 출간된 ''제3세대 연구개발:기업과의 전략적 연계''(필립 A 러셀 등 지음)라는 제목이 말해주듯 전체적 관점에서 기업목적 달성에 가장 부합할 수 있는 전략적 포트폴리오 개념으로 이어졌다.

제3세대 연구개발론에서는 단기전략과 장기전략의 균형이 강조됐고 경쟁우위 위험 수명주기 사업전략 자원 기술 등을 모두 포괄하는 매트릭스 분석이 등장했다.

경영진 사업관리자 그리고 연구관리자의 협력(partnership)도 요구됐다.

이렇게 제1세대에서 진화적으로 발전한 제3세대 연구개발론도 변화된 환경을 극복할 수는 없었다.

기존의 지식을 토대로 한 포트폴리오 전략은 자연스레 기존시장에서 기존제품의 혁신,즉 점진적인 ''연속적 혁신''에 치우치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기술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기술변화 또한 그 속도가 매우 빨라지면서 한계를 보이기 시작했다.

더구나 기존 경쟁의 ''판''을 뒤엎는 디지털 경제하에서는 특히 그랬다.

제4세대 연구개발론의 특징은 ''비연속적 혁신''에 주목한다는 점이다.

기초과학 연구를 토대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돌파형 혁신(Breakthrough innovation)''과 서로 무관해 보이는 기존 과학기술적 지식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지식의 창출과 혁신을 이뤄내는 ''융합혁신(Fusion Innovation)''이 그것이다.

이런 혁신은 비단 정보기술 분야뿐 아니라 생명기술,나노기술 분야 등에서도 계속 이어질 것이기에 제4세대 연구개발론은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유형의 혁신으로 일거에 시장에서 지배적 위치를 차지했을 때 수확체증(increasing returns)이나 잠금효과(lock in)로 인한 경제적 성과가 막대하다는 점이다.

대기업 중소기업 할 것 없이 선진기업들이 제4세대 연구개발론에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돌파형 혁신이나 융합혁신은 기업의 경영과 조직전반의 변화없이는 관리 자체가 불가능할 수 있다.

지금 선진기업들이 아예 기업내부 차원을 넘어서 공급자 고객 외부협력 파트너 등으로 혁신활동의 외연을 확대시키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어쩌면 1,2세대 또는 기껏해야 3세대의 연구개발론에 머물러 있는 대다수 우리 기업들이 결코 그냥 넘길 일이 아닌 것 같다.

안현실 전문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 (11월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