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애 < 건축가 /(주)서울포럼 대표 >

얼마 전 경영부문 베스트셀러로 떠오른 ''위대한 2인자''라는 책의 원작 제목은 ''공동리더십(Co-Leadership)''이다.

권력의 2인자로 보기보다는 공동으로 리더십의 책임을 진다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책,공동리더십을 가능케 하는 덕목을 꼽은 것이 인상적이다.

온갖 조명을 받는 영광의 최고지도자 옆에는 그를 받쳐주는 공동리더십의 존재가 필수적임을 보여준다.

1등,1위만 강조하고 공동협력정신이 모자란 우리 사회,맹목적 추종과 하나부터 열까지 ''같은 편 되기''를 기대하고,그 반면 책임과 권한의 공유의식이 모자란 우리 사회에서 귀기울일 만한 메시지다.

2인자가 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자신을 낮추어야 하기도 하고 또 높이기도 해야 하고,자신의 역할을 감추기도 해야 하고 또 명확하게 드러내야 하고,협력자와 책임자의 역할을 넘나들어야 하고,적절한 시점에 홀로 서기 역량을 보여주기도 해야 한다.

''그늘 속의 실체''를 만들고 ''공동 리더십의 역학''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 2인자의 역할이다.

고어는 미국 정치시스템에서 전통적인 약점 중 하나인 ''왜소한 2인자 부통령''을 ''위대한 2인자 부통령''으로 만들었다.

힐러리는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또 다른 종류의 퍼스트 레이디 상을 만들었다.

그 어려운 1인자,냉전 이후 세계에서 오직 하나의 패권국가 ''미국''이라는 나라의 대통령 옆에서이다.

새로운 시도라 하면 짓밟고 비난하고 그 시도조차 사소하게 만들려고 하는 험하디 험한 사회 압력 속에서 이룬 성취다.

''장식용 부통령'' ''의전용 퍼스트 레이디''의 개념을 깨고 명실상부한 공동리더십의 역학을 이루었다.

위대한 공동리더십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공통의 목적'' 때문이다.

그들은 ''일''을 통해 뭉칠 뿐이다.

''공동의 과업''을 헤쳐가려는 의지에 의해 뭉칠 뿐이다.

밖으로 어떤 비판을 듣던 간에 ''일의 성과''를 이루기 위해 서로의 머리를 맞댄다.

위대한 공동리더십은 ''역할의 분담''에 의해 이루어진다.

최고지도자의 역할이란 지대하기 짝이 없는 것이지만,한 개인의 역량은 어떤 경우에나 한계를 가진다.

더구나 최고결정권자의 위치 자체가 극히 외롭고 힘든 것임에야 그 부담을 덜어주는 공동지도자들의 역할은 긴요하기 짝이 없다.

위대한 공동리더십은 ''위험분담의식''이 받쳐준다.

고어와 힐러리는 때로 대통령의 정책이 실패로 드러났을 때에,더구나 클린턴이 섹스 스캔들로 얼룩진 때에도 팀웍의 정신을 지켜냈다.

그 속내가 무엇이든 간에 사회적 행위로서 영예로운 일이다.

물론 위대한 공동리더십을 가능케 하는 데에는 최고지도자의 역량을 빼놓을 수 없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자신감,자신의 권위에 대한 자성의식,권력 공유에 대한 자신감,일의 목표에 대한 공감대 조성 등.

이 점에서 클린턴은 수많은 결점을 가진 대통령임에도 불구하고 빼어난 최고지도자의 덕목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공동리더십의 정신은 작금의 변화하는 세계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워낙 이슈들이 서로 엉켜 있고,하나의 정답만이 있는 아니라,수많은 길 가운데서 선택이 중요하고,수많은 이해집단들이 서로 으르렁거리고,그런가하면 모든 사람들이 스마트해지고 그 스마트함을 인정받고 싶어하는 사회다.

이 복잡다단한 세계에서 리더십의 개념은 바뀌어야 할 것이다.

''절대적 리더십'' 대신 ''위대한 공동리더십''이 필요한 시대다.

''끌어가는 리더십''에 더하여 ''받쳐주는 공동리더십''이 필요한 시대다.

고어와 힐러리는 공동리더십 정신만으로도 기록될 만한 인물이다.

그들이 어떤 자리에 있건 또 다른 리더십을 발휘하기를,또 다른 종류의 위대한 공동리더십의 전통을 만들기를 기대한다.

미국 내에서 또한 세계에서도….

우리 사회에서 위대한 공동리더십을 바라는 것은 부질없는 꿈에 불과할까.

그럴 리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