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상거래가 새 천년 비즈니스의 기회로 예찬되고 있는 가운데 ''이제 닷컴시대는 끝났다''는 수상한 이야기가 나돈다.

아닌게 아니라 2000년 10월30일자 포춘(Fortune)지는 ''닷컴 몰락의 교훈''을 특집으로 다루고 있다.

아주 오래전 VC라는 말이 베트콩을 의미했고,안드레 아가시의 머리가 아직 길었을 때 전혀 새롭고 신기한 것이 나타났다.

그것은 정보고속도로 월드와이드웹 인터넷 등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리면서 마치 지구를 강타한 운석처럼 지구상의 부와 비즈니스의 지형에 엄청난 충격을 가져왔다.

신흥기업이 급성장하고 기존 대기업들이 몰락하는 가운데 새로운 희망이 살아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얼마나 잔인한 환상이었던가.

닷컴 현상은 신기루처럼 왔다가 엉망진창이 돼 버린 파티장처럼 종언을 고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기업은 반드시 이윤을 얻어야 할 필요는 없다든가,생산이나 영업의 기반을 구축하기도 전에 미리 기업을 공개하여 자본을 조달해도 무방하고 더 효율적이라는 등의 이야기들이 닷컴시대의 노하우로 회자되었다.

그러나 이제 닷컴시대는 끝났다.

너무나 평범한 물리법칙을 무시한 닷컴의 신화는 상실과 허탈의 공황으로 끝났다.

우리에게 있어 닷컴현상은 벤처의 환상과 증권시장의 무정부성이 만들어낸 합작품이었다.

한때 산자부의 현직장관은 우리 나라의 벤처기업이 미국이나 다른 선진국보다 훨씬 더 높은 성공률을 보인다고 자부한 적이 있었다.

미국 등 다른 나라의 경우 벤처의 기회가 어느 정도 주어지는데 비해 우리의 경우엔 한번으로 성공해야 금융지원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성공률이 높은 벤처만이 시도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은 설득력이 있었다.

정부는 마치 간이라도 빼 줄 것처럼 벤처들을 어여삐 여기고 독려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돈이 마르기 시작했다.

은행들이 스스로 생존을 위하여 돈줄을 조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곳곳에서 아우성이 일어났고,실물경제의 몰락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정부는 슬그머니 벤처이야기를 피하기 시작했다.

무차별적인 벤처예찬론은 이후 정부의 후원하에 일어난 벤처의 과잉현상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벤처기업들이 처한 위기의 배경은 단지 금융경색만이 아니다.

벤처 자체의 리스크를 우리가 너무나 안이하게 저평가했을지도 모른다.

또 어쩌면 지원대상을 무분별하게 확대 선정하여 정작 집중지원이 필요한 유망 벤처를 계속 지원하지 못하게 되는 사태가 생겼을 수도 있다.

아직도 밤을 새우며 테헤란밸리의 불을 밝히는 유망한 벤처들이 도맷금으로 위기에 빠지게 된 것도 바로 옥석을 가리지 못한 벤처정책이 가져온 부수적 결과일 것이다.

증권시장은 어떠했는가.

이익 실현가능성과는 무관하게 단지 몇억달러의 외자를 유치했다는 사실만으로 주가가 폭등하는 일들이 닷컴의 환상을 더욱 부추겼다.

주식시장은 마치 카지노에서 잭팟을 그리며 돈을 거는 투자자들의 노름판처럼 변해버리고 말았다.

결과는 참담했다.

갑자기 생긴 날개로 수직상승했다가,갑자기 날개를 잃어버리고 만 닷컴기업들의 끝없는 추락이었다.

한때 인터넷은 신규진입자에게 유리하고,다수의 구식 기업들을 몰아내는 결과를 가져오는 일종의''파괴적 기술''이라고 설명됐다.

그러나 그런 예측은 크게 빗나갔다.

실제로 냅스터나 e베이,온라인 비행기표 예약서비스처럼 기존 업계를 교란시킨 경우도 없지 않았지만, 닷컴 도메인이름을 내걸고 무모한 항진을 감행한 많은 기업들이 닻을 내려야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터넷비즈니스의 1세대인 닷컴시대는 종언을 고하고 있다.

그러나 닷컴시대는 끝났지만 인터넷시대는 바로 막 시작되었을 뿐이라는 포춘의 진단은 고무적이고 도전적이다.

이제 진검승부가 기다리고 있다.

명목상의 이윤이 허상으로 밝혀진 이상 이제 인터넷산업의 건설을 위한 토대를 닦을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 것이다.

견실한 수익구조와 경영기법,자본적 기초체력을 갖춘 인터넷기업들만이 살아 남아 정면승부를 겨루는 인터넷 적자생존의 전쟁이 지금 시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