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기업 퇴출작업이 일단락되면서 2단계 금융.기업 구조조정이 급류를 타고 있다.

퇴출여부에 관심이 쏠렸던 고합등 상당수 대기업이 회생,대마불사라는 비판도 받았지만 현대건설의 자구안을 놓고 채권단이 막판까지 고삐를 풀지 않은 것은 원칙을 지키려고 나름대로 노력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그러나 98년 1차 퇴출기업 선정 당시 청산명단에 올랐던 기업들이 다시 청산기업으로 분류되는 등 ''빈껍데기'' 기업 처리사례도 많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원칙중시=이번 부실판정으로 부실징후가 있는 대기업들을 살릴지,죽일지 처리방향을 명확히 해 시장의 불투명성을 제거하겠다는 정부의 목표는 절반쯤 달성된 셈이다.

나머지 절반은 앞으로 금융권과 시장이 판단할 몫이다.

정부와 채권단은 당초 살리는 쪽에 무게를 둔 게 사실이다.

때문에 뚜렷한 원칙없이 퇴출기업 숫자(55개)만 조절했다는 비판을 들었던 1차 퇴출 때(98년 6월)와 마찬가지라는 비판이 강하게 제기됐다.

쌍용양회 고합 등이 살아나면서 이런 비판은 거세졌다.

시장에서 ''대마불사,용두사미(龍頭蛇尾)''라는 얘기가 흘러나오자 정부와 채권단은 ''원칙대로''로 선회했다.

채권단이 현대건설에 대해 당초 알려진 것처럼 조건부 회생 대신 유동성 문제가 발생하면 바로 법정관리에 넣기로 한 것은 이같은 의지를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

현대건설에 대해서는 시한부 회생 말미를 준 셈이어서 채권단이 결연한 입장을 밝혔다는 지적이다.

◆회생판정 받아도 안심 못한다=이번에 회생판정을 받은 기업이라도 언제든지 퇴출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

반대로 법정관리에 넣었더라도 중간에 경영상태가 좋아지면 되살아날 수도 있다.

그만큼 부실기업 처리가 유연해지는 셈이다.

유동성 문제가 있지만 채권은행이 책임지고 살리기로 한 69개 기업은 신규자금이나 출자전환(대출금을 주식으로 교환) 등의 지원을 받는 대신 감자(減資,기존 지분 소각),경영진 교체 등 부실경영의 책임을 감수해야 한다.

금감원 관계자는 "자구노력을 통해 이자보상배율을 높이고 진성어음을 제대로 결제하지 못하면 언제든지 퇴출대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번이 끝이 아니다=국내외 전문가들은 부실판정 작업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금융연구원의 한 연구위원은 "정부가 지난 3년간 강력한 구조조정을 외치면서도 제대로 퇴출도 회생도 아닌 채 흐지부지 끌고온 게 아직도 성과를 내지 못한 이유"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금융감독원은 앞으로 여신 5백억원 미만인 기업도 은행들이 분기마다 점검해 부실한 곳은 퇴출시키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금융계 인사는 "경제는 강물과 같아 오·폐수(부실기업)를 방치하면 강물(한국경제)이 썩는다"고 지적했다.

하수처리장(부실기업 처리장치)을 제대로 작동시켜 지속적인 기업의 생성·퇴출을 이루는 것이 정부의 숙제로 남게 됐다.

오형규 기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