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살생부가 공개됨에 따라 그동안 시장을 짓눌러온 심리적 불안감은 다소 완화될 전망이다.

하지만 이번 결과가 신용경색 해소와 금융시장 안정으로 이어질지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금융계 관계자는 "퇴출 기업들은 대부분 기존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이나 법정관리 중인 업체들"이라며 "이번 부실기업 판정이 ''소문난 잔치''로 끝남에 따라 시장 불안감을 완전히 잠재우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옥석을 구분해 잠재적인 걸림돌을 제거했다기 보다는 시체를 치우는데 그쳤다는 평가다.

그렇지만 당장 퇴출기업과 거래하던 중소 협력업체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법정관리행을 선고받은 건설업체에 철근을 납품해온 중소업체 사장은 "당장 어음 20억원을 현금화할 길이 막혀 연쇄부도를 맞게 생겼다"며 울상을 지었다.

한은 금융시장국 관계자는 "이번 기업퇴출 조치로 부실이 현실화된 은행들은 대출 줄을 더욱 죄게 될 것"이라며 "단기적으로 자금사정이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여기에 내달중 만기 도래하는 10조원의 회사채가 금융시장의 ''시한폭탄''으로 떠오르고 있다.

내년에도 상반기 22조3천억원과 하반기 38조5천억원등 60조원에 달하는 회사채 만기가 기다리고 있다.

반면 자금시장 안정을 위해 마련된 10조원 규모의 1차 채권전용펀드의 여력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정부가 기업 자금난을 덜기 위해 도입한 프라이머리 CBO(채권담보부증권)를 통해 총 3백24개사가 5조1천5백33억원 어치의 자금을 조달했다.

이중 투기등급 (BB+이하) 회사채 편입비율은 32%(1조6천5백억원)에 불과한 실정이다.

투신운용사 관계자는 "프라이머리 CBO 발행이 일부 투기등급(BB+이하) 기업의 자금난을 더는데 도움은 됐으나 전반적인 자금경색을 푸는데는 턱없이 모자랐다"고 말했다.

김상환 금융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기업 자금난은 단기간에 해소될 수 있는 성질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금융기관들의 위험기피 성향은 여전히 높아 우량과 비우량기업간 자금사정의 부익부-빈익빈 현상은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병연 기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