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준 사건"을 계기로 벤처기업과 정.관계의 커넥션이 도마 위에 올랐다.

도대체 벤처기업이 정치인이나 관료들과 검은 거래를 할 이유가 무엇일까.

순수한 열정으로 사업에만 전념해도 모자랄 판인 벤처인들이 왜 스스로 관료들에게 돈을 뿌리고 주식을 상납했던 것일까.

이런 의문을 푸는 것은 위기에 몰린 한국 벤처기업을 되살리는 실마리의 하나가 될지 모른다.

◆ 벤처정책의 거품 =벤처기업의 정.관계 유착에 대해 전문가들은 한국에서의 벤처 붐이 철저히 정부 주도로 이뤄졌다는 데서 뿌리를 찾는다.

시장이 아닌 정부가 벤처기업을 지정하고 인위적으로 육성하다보니 벤처기업이 출발부터 정부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실제로 정부는 실업자 구제와 경제위기 극복을 명분으로 지난 98년부터 벤처육성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오는 2005년까지 벤처기업을 4만개나 만든다는 목표수치까지 세워 벤처기업이란 ''딱지''를 남발했다.

이렇게 해서 생긴 벤처기업이 지난 9월말 현재 9천개사를 넘는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벤처기업을 정부가 지정하는 곳은 없다. 게다가 정부가 건수 올리기식으로 벤처기업을 양산하다보니 사이비 벤처들이 끼어들고 시장을 문란하게 만든 것이다"(벤처기업협회 관계자)

한마디로 벤처기업을 대량 생산해 내기만 했지 질적인 경쟁력은 고려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 정부도 ''묻지마 지원'' =정부의 무분별한 지원도 문제였다.

일단 벤처기업으로 지정만 되면 세무조사를 면제해 주고 전폭적인 금융.세제상 지원을 해준 것이 벤처기업의 도덕적 해이를 야기했다는 것.

예컨대 벤처투자 자금에 대해 자금출처를 묻지 않는 제도는 검은 돈과 벤처 사이에 가교역할을 했다.

개인의 벤처투자 수익에 대해 면세를 해준 조치는 사채업자들이 차명계좌를 통해 벤처투자에 몰리는 부작용을 낳았다.

이러한 문제점은 소위 ''정현준 게이트''에 집약돼 드러났다.

뿐만 아니다.

시중에 벤처투자자금이 넘처 흐르는 데도 정부는 재정자금까지 벤처투자에 쏟아 부었다.

정부의 ''눈먼 돈''을 따내기 위한 경쟁이 붙은건 당연했고 벤처기업들은 정.관계 커넥션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된 것이다.

대표적인게 중소기업청이 예산으로 조성한 공공펀드인 국민벤처펀드.

지금까지 3백억원 가까이 조성된 국민벤처펀드를 운영하는 중소기업진흥공단에 국회의원이나 정부 고위층의 청탁이 쇄도하고 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특히 벤처기업에 대한 민간투자가 급격히 위축된 최근엔 압력성 청탁이 더욱 많아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지난 5월 5백억원 규모의 다산벤처펀드라는 공공펀드를 또 만들어 논란을 빚었다.

급기야 지난 7월엔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공공벤처펀드를 통해 정부가 벤처기업에 직접 투자하는 것은 부작용이 크기 때문에 재검토해야 한다"는 건의를 내놓을 지경에 이르렀다.

◆ 고무줄 규제는 로비의 씨앗 =벤처기업에 대한 ''당근''(지원)만 문제가 되는건 아니다.

당근과 함께 따라다니는 ''채찍''(규제)은 더 문제다.

특히 벤처기업의 코스닥 등록 심사때 고무줄식 규제는 늘 논란거리였다.

"처음 심사에서 기각됐을 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2∼3번 반복되다보니 뭔가 이상했다. 주변에서 ''주식을 좀 뿌렸느냐''고 물을 때서야 이유를 알아차렸다"

여러차례 퇴짜를 맞은 후에야 최근 코스닥 등록에 성공한 한 벤처기업 사장의 경험담이다.

투명한 잣대 없이 심사강도가 오락가락하는 당국의 태도가 ''로비의 씨앗''이 됐던 셈이다.

특히 정부가 코스닥 시장 침체 이후 물량규제를 한다며 신규 등록을 억제한 것은 벤처기업들의 로비강도를 세게 만들었을 뿐이다.

◆ 정부는 시장조성에 그쳐야 =물론 우리 벤처산업이 국민적 관심을 모으게 된 여러 배경중 정부의 공(功)을 무시할 수는 없다.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방향 제시가 지금까지의 벤처산업 발전에 밑거름이 된건 분명하다.

그러나 정부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시장조성과 기반구축에 그쳐야 한다.

거기에서 더 나갔다간 부작용이 나오게 마련이다.

"정부는 시장 기능을 저해하는 규제와 간섭을 우선 철폐해야 한다.
코스닥 시장에선 공정거래 질서가 확립되도록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벤처지원도 직접 투자보다는 기초과학 원천기술 등 벤처기업이 활용할 수 있는 지식자산을 축적하는데 주력해야 한다"(성소미 KDI연구위원)

정현준 사건을 계기로 정부가 되새겨야 할 조언이다.

차병석 기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