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호 < 제일투자신탁증권 대표이사 shhwang@cjcyber.com >

문화의 계절 가을이라 몇몇 음악회에 들렀다.

한 번은 공연 중간에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돈을 똑같이 받나"하고 물었더니,예의 "이 양반이 돈밖에 모르는 속물이구나"하는 표정만 되돌아왔다.

단원들의 연주하는 모습을 가만히 살펴보니,뒤쪽의 한 젊은 단원이 땀을 뻘뻘 흘리며 북을 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 단원은 앞에 있는 연주자들과 비교해서 전혀 손색 없으니 "봉급을 준다면 똑같이 주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강한 북소리가 앞에 있는 현악기를 뒷받침하면서,음을 모으듯 힘을 주지 않으면 웅장함을 느낄 수 없을 것이 확실했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적어도 20∼30년간은 자기가 연주하는 악기에 혼신의 힘을 다해 노력해 온 사람들이리라.

북을 치는 청년이 다른 사람보다 적은 보상을 받는데도 저렇게 열심인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의 생각으로 그 청년은 심포니에서 차지하는 북의 역할을 좋아하고 또 본인이 그 북을 선택했던 게 아닌가 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또 그 일이 의미가 있으면 사람들은 그 일을 위해 많은 것을 버릴 수 있다.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라는 시는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신비감과 가지 못하는 회한을 얘기한다.

그러나 남이 가는 길에 대한 부러움 때문에 내가 가고 있는 길에 대한 방향을 잃을 수는 없다.

우리가 치는 북이 ''세상사''라는 심포니를 더욱 힘있고 강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믿어야 한다.

북을 치면서 "바이올린을 켜야 하는데…"하고 건너편을 바라보며 이런 저런 계산을 거듭하게 되면 자기 일에 집중하지 못하게 된다.

필자도 가보지 못한 길이 많다.

북을 치면서 건너편 악기도 부러워 해 봤고,북 치는 자리를 뺏겨도 봤다.

주위의 많은 친구들이 이제 퇴출 1순위에 올라 있거나,어려움에 처해 있다.

우리는 자의든 타의든 북 치는 자리를 잃어가고 있지만,그러나 ''내가 선택한 자리에서 열심히 북을 쳤던가''하고 돌아봐야 한다.

물론 젊은 시절엔 여러 가지 악기도 해보고 다른 종류의 북도 쳐 보아야 한다.

그러나 언젠가는 내가 칠 북을 선택하고 우직한 집중으로 그 북을 쳐서 심포니의 화음을 만들어 내야 한다.

변화와 창의가 ''닷컴 시대''의 성공을 위한 화두라지만,선택 후의 우직함 없이는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북 치는 젊은 청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