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와 정부간의 협상이 오랜 진통끝에 합의에 이르러 그 결과가 지난 24일 발표됐다.

파행진료로 고통받고 있는 환자들을 생각하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합의 내용을 보면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모두 13개항에 걸친 이번 합의사항은 의료보험재정의 확충을 비롯해 의료수가 및 의료전달 체계의 개선,의료행정 시스템의 개선 등 의료제도 전반을 망라하고 있다.

물론 이번 합의가 의약정 회의와 새로 설치될 의료제도개혁특별위원회에서 논의 확정돼야 하고,국회심의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는 아직 단정하기 이르다.

그러나 정부가 약속한 대부분의 내용이 정책으로 실현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면 염려스러운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우선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이 대폭 늘어날 것이란 점이다.

의약분업이 실시된 이후 이미 두차례에 걸쳐 의료수가가 인상됐고,앞으로도 얼마나 더 올라갈지 가늠하기 어렵다.

의료보험에 대한 재정지원확대는 의사들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국민들의 호주머니를 턴다는 비난을 받을만 하다.

물론 그동안의 낮은 의보수가 책정 등으로 질 높은 의료서비스가 이뤄지지 못한데다 구조적으로 적자를 면치 못하게끔 설계돼있는 현행 의료보험체계는 어떤 식으로든 개선방안이 모색돼야 한다는데 이의를 달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러나 보험료 인상과 재정지원 확대만이 유일한 해법인가는 좀더 생각해볼 문제다.

보험급여대상의 재조정 등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더구나 이번 합의사항이 실천에 옮겨지면 환자 개개인의 직접부담도 꽤 늘어나게 된다.

진찰료와 처방료의 합산,본인부담금 한도 인상,전공의 근무 병원에 대한 수가가산율 인상 등이 여기에 속하는 것들이다. 정부는 의약분업을 실시하더라도 환자부담은 늘지 않는다고 누차 강조해왔다. 그런데 국민불편이 가중되고 부담까지 늘어난다면 의약분업은 정착이 힘들다. 국민부담을 최소화할수 있는 보완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그런가 하면 과잉진료를 시정하기 위해 도입하려던 포괄수가제는 뒤로 미루고, 환자들이 가벼운 증상으로도 종합병원만 찾는 왜곡된 의료전달체계를 개선하기 위해 도입하려던 주치의제 역시 ''여건조성 이후''로 연기한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한가지 더 눈여겨 보아야 할 합의사항은 ''의과대학 정원 10% 감축''이다.

근래들어 의과대학의 신설이 늘어 머지않아 의료인력의 과잉공급이 우려된다는 연구결과가 이미 제기된바 있어 의료인력 수급정책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기득권 보호를 위해 진입을 제한하려는 집단이기주의로 해석될 여지도 없지 않다.

문제는 의사수가 늘어나면 의료서비스가 달라져야 함에도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다는 점이다.

오히려 불친절의 표본으로 꼽히는 곳이 종합병원이다.

지난해말 기준 의사 1인당 인구수는 우리나라가 6백86명으로 미국 4백24명,독일 3백27명 등 선진국에 비해 훨씬 많다.

의사수를 더 늘려야 한다는 얘기다.

교육시설을 제대로 갖추지도 못한채 의과대학 정원을 늘리다 보니 신규배출되는 의료인들의 질이 떨어진다는 평가도 있지만 이는 정원을 줄이기 보다 교육의 질을 높이는 것이 올바른 처방이다.

어쨌든 전반적인 의료제도 개선은 장기적으로 신중하게 검토할 일이다. 의료계가 국민들의 생명을 담보로 협상을 벌이면서 궁지에 몰린 정부를 상대로 케케묵은 현안까지 일거에 얻어내려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 아닌가 싶다.

앞으로 정부가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걱정이다.

의약정 대화는 시작부터 난항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의료제도의 선진화를 위해 의약분업을 실시한다고 하면서 오히려 의료제도를 후진시키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점이다. 정부는 확고한 원칙과 명백한 기준을 세우고 이를 철저히 지켜나가야 한다.

최근들어 의사에 이어 조종사 교사 등 공공성이 큰 전문직 종사자들의 집단행동이 빈발하고 있다.

이들에게 목전의 이익을 확보하는 대신 자신들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손상시켜 장기적으로 더 큰 손해를 불러오는 자해행위는 아닌지 진지하게 검토해 보기를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