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방상호신용금고와 인천 대신상호신용금고의 6백37억원 불법대출로 불거진 "정현준 게이트"는 정현준 한국디지탈라인 사장과 이경자 동방금고 부회장의 합작품으로 드러났다.

또 서울 해동금고와 한신금고도 정 사장과 출자자에게 불법 교차대출을 해준 사실이 새롭게 밝혀져 금고업계에 적지 않은 파장을 몰고올 전망이다.

금융감독원의 수표추적 조사결과,정 사장은 작년 10월1일 태평양그룹으로부터 동방금고를 인수하자 마자 21개의 3자 명의로 6백7억원을 대출받았다.

대신금고에선 2개의 3자 명의로 30억원을 끌어썼다.

이 사건은 표면적으론 정 사장의 "1인 자작극"인 셈이다.

6백37억원이 모두 정 사장에게 흘러갔다는 것이다.

그러나 금감원은 이 부회장이 직.간접적으로 개입됐다는 심증을 잡고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김중회 금감원 비은행검사1국장은 "동방금고 불법대출에 사용된 21개 3자 명의의 통장을 정 사장은 물론 이 부회장도 관리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금감원조차 이번 불법대출 수법을 보고 혀를 내두른다.

금고에 대한 상시감시를 강화했음에도 출자자대출,교차대출,차명계좌 활용,관계사 동원 등 불법행위가 총동원됐다는 것이다.

금감원의 금고 감독.검사 인력부족으로 금고업계에 사각지대가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동방금고는 6월말 현재 BIS(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비율이 18.65%에 달하고 지난 회계연도에 39억원의 흑자를 낸 우량금고다.

연말까지 BIS비율 6% 미만의 부실우려 금고에 대한 구조조정에 바쁜 마당에 멀쩡해 보이는 금고까지 감시할 여력이 없었던 탓이다.

대신금고는 이미 작년 11월 출자자 불법대출로 적발된 선례가 있지만 이번엔 대출액이 30억원에 불과해 적발이 늦었다.

정 사장은 그동안 인수한 20여개 관계사와 주변인물을 총동원해 문어발 확장과 운영자금을 마련했다.

"M&A(인수합병) 귀재"가 금융기관을 인수한 것은 결과적으로 고객돈을 주머니돈처럼 꺼내쓰기 위한 목적이었다.

이는 과거 일부 재벌그룹이 종금사를 인수한뒤 막대한 부실대출로 손실을 끼친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사채업에서 제도권으로 들어온 금고업계 일부 경영진의 모럴해저드(도덕적해이)도 이 사건을 계기로 재확인됐다.

금고법에 엄연히 금지된 출자자 대출(지분율 2%이상 출자자에게 대출금지)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금감원 관계자는 "아무리 감시하고 제재해도 출자자대출이 근절되지 않는 게 금고업계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정현준 게이트에 연루된 서울의 대형금고인 해동금고와 한신금고도 영업에 적지 않은 타격을 입게 됐다.

정 사장은 타인명의를 빌리는 것으로 모자라자 다른 금고와 결탁했다.

이는 재벌 금융계열사들이 서로 교차지원해주는 것과 다를 바 없고 금고업계가 항상 불법과 합법의 줄다리기를 한다는 증거다.

금융계에선 금융시장의 신뢰회복을 위해선 금고업계의 고질적인 불법 관행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철저히 뿌리뽑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내년 예금부분보장제를 앞두고 터진 악재로 인해 금고업계 스스로 철저한 자정노력이 없으면 선의의 다수 금고들까지 공멸하게 만드는 최악의 경우도 배제할 수 없다.

오형규 기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