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의 ''만종''이나 ''이삭줍기'' 만큼 우리에게 친숙한 그림은 없을성 싶다.

20년전만 해도 농촌의 가정집이나 이발소엔 흰 페인트로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란 글씨를 써넣은 ''만종'' 아니면 ''이삭줍기'' 액자가 내걸린 것이 보통이었다.

''생활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는 푸슈킨의 시구가 적힌 것도 많았다.

농촌사람들은 화가의 이름이나 화제는 알 필요가 없었다.

그저 그림을 보면 무언가 가슴속에 와닿는 것이 있었던 모양이다.

밀레 그림의 이런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미술사가들은 삶의 진실을 그렸기 때문이라고들 한다.

장 프랑수아 밀레(1814~75)는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의 그레빌에서 태어났다.

고향인근에서 그림공부를 하다가 37년 장학금을 얻어 파리로 진출 들라로슈의 제자가 됐다.

그 무렵 프랑스의 아카데미는 고상한 그림은 고상한 인물을 그려야 하며 노동자나 농민은 그려서는 안된다고 믿고 있었다.

이런 주제에 관한 인습에 반대하는 화가들이 48년 파리인근 바르비종에 모여 살았다.

밀레도 이곳에 이주해 농민의 생활모습을 주제로 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 계기가 된 첫 작품이 ''곡식을 키질하는 사람들''이다.

그의 대표작중 하나인 ''이삭줍기''(57년)는 어떤 극적인 사건도 없고 줄거리도 없다.

세명의 농부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을 뿐이다.

그들은 아름답지도 우아하지도 않다.

목가적인 분위기가 흐르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농부들의 건장한 체격과 신중한 움직임이 강조돼 아카데미파 그림의 영웅들보다 더 자연스런 품위를 지니고 있다.

그의 작품에서는 독특한 시정과 우수에 찬 분위기, 어딘지 모르게 종교적 정감까지 풍긴다.

이 점이 지금까지 그의 작품이 명화로 사랑 받는 이유가 아닐까 한다.

파리 오르세미술관 소장의 ''이삭줍기''가 덕수궁미술관에서 26일부터 열리는 ''인상파와 근대미술전'' 전시작품으로 서울에 왔다는 소식이다.

미국 일본에 이은 세번째 바깥 나들이라고 한다.

친숙한 그림인 만큼 진품을 보기 위해 전시회장을 찾는 관객도 많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