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문화적 욕망이 분출하는 시대를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했다.

가히 도발적이라고 할 만큼 극렬하고 충동적이다.

감각적으로 흐르는 대중문화의 발호는 보이는 대로만 보았을 때 생동하는 우리 시대의 문화적 표정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듯 하다.

이런 동적인 에너지의 분출은 도대체 어떻게 가능하게 된 것일까.

얼핏 그것은 우리 사회의 작은 일상에까지 민주적 삶의 가능성이 실현되고 있다는 징후로 읽힐 수 있다.

우리는 획일적이며 교조적이고 억압적인 생활의 리듬으로부터 서서히 벗어났다.

개체적 실존의 자기 삶을 찾으려는 욕망은 동시다발적으로 터지는 외침처럼 시끄럽고 무질서하지만,그만큼 새롭고 활력적이다.

가령 ''서태지 신드롬''이라고 표현되는 음악적 성공은 ''안티문화''를 상징한다.

그의 음악이 표출하는 기성문화,세대,제도,양식,삶의 전반적 양태에 걸친 노골적인 반항의식은 또래의 젊은이들에게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서태지 앨범의 대부분은 그 음악성까지를 포함하여 기성문화에 대한 공격성을 내포한 여러 형태의 음악적 장르와 주제와 형식들을 짜깁기한 비빔밥 형식의 새로움이다.

그러니까 서태지 음악의 새로움과 열광의 속 내용은 이른바 ''패스티시(pastiche·혼성 모방)''라고 불리는 포스트모던 정서와 기법을 일정 부분 대변한다.

서태지 음악이 카오스적인 것은 패스티시 기법에서 연유하고 있는 셈이다.

자세히 관찰해보면 오늘의 현실이 이미 구조적으로 그것을 조장한다.

그 조장하는 바를 문화로 정착하게 하는데 일조한 것은 물론 컴퓨터의 발달이며,그것을 통신 네트와 결합한 인터넷의 등장을 지목할 수 있다.

전쟁무기의 지속적인 개발과 확장과정에 통신과 컴퓨터의 발달사가 기록되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이다.

따지고 보면 오늘날 모순된 인간 삶이 이미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어떤 단일한 준거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시대의 삶을 그 아이러니적 정황은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다.

말하자면 소음에 가득 찬 듯한 젊은 문화의 도발이 암시하는 것은 바로 이 삶의 불안,소외에 대한 자기 외침의 성격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고전적 의미에서의 자기 정체성,민족적 고유성,문화적 순결성은 급속하게 와해돼 가고 있다.

그 와해의 틈으로 자라난 ''퓨전 문화(비빔밥 문화)''의 부상은 삶의 예측 불가능성을 은유한다.

우리 사회에 비빔밥 문화의 범람은 사회적 삶의 양태를 이질적이며 시끄럽고 불결하게 한다.

그러나 독립적으로 보면 다이내믹한 에너지의 분출이라는 점에서 삶의 역동성을 반영하며,그만큼 순간에 집착하는 오늘의 삶에 활력이 되기도 한다.

더 이상 문화적 순결을 고집하지 않는 이런 풍조는 젊은 문화의 압도적 특징이 돼 가고 있다.

젊은이들에게 더 의미있는 것은 삶의 현재성이고,그것을 대변할 이미지이며 순간의 유희와 쾌락적 환호이다.

물론 이런 삶의 양태는 그 자체만으로는 좋다 나쁘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근본적으로 불안과 소외를 각인한 현대인들에게 더 이상 미래는 어떤 희망의 단서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순간의 삶에 집착하는 이 비빔밥 정서의 반영은 모든 문화적 기호들을 설명 불가능한 상태로 몰아가고 있다.

서태지 컴백이나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성공 뒤엔 소외된 삶들의 자기 위안을 위한 문화적 엑스터시의 발산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열광과 유희는 ''위험한 사회''의 징후를 암시한다.

파시즘적 군사문화와 ''압축성장''의 후유증은 우리를 전근대,근대,탈근대를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삼겹살 구조에 밀어 넣었다.

이른바 퓨전(비빔밥) 문화의 번성은 그런 기원을 담고 있는 것이다.

logos5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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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약력=

△한양대 국문과 졸업
△한양대 문학박사
△저서:문학과 디스토피아·문학과 이념·한국 근대문학과 이데올로기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