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홍상화

"백 사장 개인 정보를 노조에서 어떻게 알아냈을까?"

권혁배의 질문에 순간 백인홍의 뇌리에서는 10여 년 전 기억이 되살아났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리기 몇 달 전 늦봄이었다.

친구 이진범을 도와준 죄로 검찰조사실에 끌려가 조사받을 때,박수근이란 심문관이 아버지의 과거에 대한 얘기와 자신이 강간혐의로 고발당했던 사건을 처음으로 언급한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때 박수근에게 심문당할 때 그의 오른손 장지가 툭하면 자신의 이마를 퉁겼던 사실을 기억했다.

그것에 대한 답례로 몇 개월 후 다른 사람을 시켜 백인홍은 박수근의 장지를 영원히 못쓰도록 부숴뜨려버렸었다.

"백 사장 개인 정보를 노조에서 어떻게 알아냈을까?" 권혁배가 다시 물었다.

"이 두 가지 정보를 아는 자는 박수근이란 수사관밖에 없었어" 백인홍이 말했다.

"그자가 노조에 정보를 주었나?" "아니야,화가 나서 박수근이란 자를 만나보았지.그자 말이 자신은 노조에게 직접 그런 정보를 준 적이 없고,그 정보를 딱 한 사람 다른 사람에게 준 적이 있대.그게 누군지 알아?" "누구야?" "바로 황무석이야" "그자 말을 어떻게 믿어?" "황무석이가 최형식한테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대.황무석은 나한테 구원이 있어" 두 사람은 잠시 침묵 속에 술잔을 비웠다.

"어떻게 할 거야? 그래도 노조를 달래보는 수밖에..." "아니야,내 식대로 할 거야.어제 아침 직장폐쇄신고를 했어.물론 모든 퇴직금과 3개월치 봉급을 예치하고서 말이야.법대로 하는 거야.어제 저녁 아무도 못 들어오게 회사문 닫았어.노조가 파업의 권리가 있다면 경영층은 직장폐쇄 권리가 있어야지만 공평한 거야.그래야지만 공평한 타협이 이루어질 수 있어.미국은 직장폐쇄를 하면 파업중인 노조원이 공장에 들어갈 수 없게 되어 있대.필요하다면 무장한 경찰력을 배치해 재산을 지켜주기도 하고..그런데 말이야 알고 보니 어처구니없게도 김명희 동생이 노조의 강경투쟁을 부추기는 외부 세력의 주모자야" "전에 내가 도와준 그 운동권 학생 말이지?" 백인홍이 고개를 끄덕였다.

"노조원이 공장으로 문을 부수고 들어오면 어떡할 거야?" "어제 오후 강력한 공기총을 샀지.어젯밤 공기총을 옆에 두고 공장 건물 안에서 잠을 잤어.누가 허가 없이 강제로 들어오면 쏴버릴 거야.나 혼자라도 끝까지 싸울 거야" "백 사장 미쳤어?" "비굴하게 사는 것보다는 미쳐서 사는 게 나아" 그들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아 참,김명희 얘기가 나와서 생각난 건데.백 사장이 오기 전 황무석이 나한테 귀띔해주었어. 이건 수사기관에서 당분간 비밀로 해주기로 했대.진성호 부인이 병원에서 의식회복 도중이었는데 살해당했대" "뭐야?" 백인홍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