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희 < 시인 / 서강대 교수 >

얼마 전 외국에서 온 친구들과 저녁을 먹으러 인사동의 한식집에 간 적이 있었다.

저녁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갑자기 실내의 불이 꺼지고 한복을 입은 무희들이 나와 북춤을 시작으로 승무 바라춤 장구춤 등 여러가지 춤을 추었다.

전혀 예기치 않게 전통 춤을 보게 됐는데 아주 반갑고 즐거웠다.

외국친구들도 매우 좋아했다.

한국의 전통 춤을 그렇게 한옥집 방에 앉아서 보게 되니 멋스럽고 또 다른 정취가 느껴져 흐뭇했다.

또 그 뒤 언제인가, 한낮에 세종문화회관 근처에 볼일이 있어 그곳을 지나는데 회관 뒤편의 계단 앞 광장에서 작은 음악회가 열리고 있었다.

비싼 입장료를 내야 볼 수 있는 음악회가 이렇게 거리에서 열리고 있는 것이 고마워서 ''성의있게'' 음악을 감상했다.

그 뒤 이번에는 무슨 볼 일이 있어서 신도시에 갔다.

커다란 공원 근처에 주차를 하고 광장을 가로 질러 가는데, 광장 저 켠에서부터 요란한 스피커 소리가 나고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그쪽으로 모여드는 것이 보였다.

무슨 일이 벌어졌나 하고 그 쪽으로 가보니 인산인해를 이룬 인파도 인파려니와 스피커에서 흘러 나오는 북 치고 장구 치는 소리에 도무지 시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그 소리에 더하여 민요와 유행가의 열창이 이어졌다.

무슨 민속 잔치인가를 방송국에서 녹화하는 것 같았는데, 주말의 어린아이들과 어른들이 모여들어 산만하게 왔다갔다 하는 것이 마치 ''부글거리는 시장'' 같았다.

너무 산만하고 들뜬 분위기여서 문화 감상도 감상이려니와, 아이들을 위한 교육 효과도 얻을 것이 전혀 없어 보였다.

또 그 며칠 뒤 대학로에 볼 일이 있어 마로니에 공원 근처에 갔다.

거기에서는 젊은이들의 치열한 춤판(이것은 의도적 공연이 아닌 자발적 공연)이 벌어지고 있었다.

요즘은 이렇듯이 어디를 가나 춤과 노래가 어우러진 공연판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마치 ''문화 게릴라전''이 도시의 여기 저기에서 ''백화 만발하듯이'' 피어 나고 있다.

21세기는 문화 상품으로 승부하는 ''문화산업의 시대''다.

따라서 사회 분위기가 그것을 장려하고, 또 거기에 발맞춰 문화 상품의 개발과 보급이 상당히 이루어지고 있는 듯 보인다.

시인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의 민속예술과 전통예술이 거리의 곳곳에서 숨쉬어 살아나고, 또 클래식 음악회가 거리에서 열리며, 모든 예술적인 것들이 사회의 곳곳에서 꽃피어 나고 있는 것을 어찌 서운하게 생각할 것인가.

그러나 요즘 내가 체험한 몇가지를 통해서 생각해 볼 때, 이 시대의 ''문화''라는 말이 관광 상품으로서의 공연예술에만 온통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 씁쓸해진다.

한마디로 분위기가 너무 들떠 있다.

공연예술은 공동체의 마음에 순간적으로 흥취를 불러 일으키는 마술적 힘을 갖고 있기에 축제적 성격을 지닌다.

그러나 축제는 항시 열릴 수도 없고 또 항시 참여할 수도 없다.

문화부가 문화체육부가 되고 그후에 문화관광부로 바뀌더니, 아무래도 관광 상품과 연계될 수 있는 문화에 초점을 맞춰서 이같은 분위기가 무르익게 된 것은 아닌가 하고 혼자 생각을 해 보았다.

그러나 문화란 공연문화만 있는게 아니다.

관광 상품이 될 수 없는 문화도 사실은 민족문화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다.

한쪽에서는 공연예술 풍년이 들었는데, 한쪽에선 좋은 책들이 읽히지도 팔리지도 않는다고 아우성이다.

진지한 작품을 쓰는 시인.작가들은 누구도 거들떠 보지 않는 밀실에 처박혀 차가운 소외와 방향 상실, 자기 모독감을 견디고 있다.

내일의 문화는 오늘의 문화 생산에 달려 있는 것이다.

누군가 오늘 생산하지 않으면 내일의 문화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문화의 분위기는 요즘 너무 들떠 있는 것 같다.

가을은 흔히 독서의 계절이라고 한다.

그런데 문학계엔 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 모두 신명이 없어 보인다.

sophiak@ccs.sogang.ac.kr

---------------------------------------------------------------

◇ 필자 약력 =

△서강대 영문과 및 국문과 대학원 졸업
△시집 ''태양미사''
△장편소설 ''왼쪽 날개가 약간 무거운 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