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한국중공업 민영화를 추진하면서 자산총액 또는 매출액이 일정규모 이상인 대기업들의 참여를 배제하기로 한 것은 구태의연하고 잘못된 발상이라고 본다.

경제력 집중을 걱정하는 뜻은 이해하지만 외국의 거대기업은 괜찮고 국내 대기업들은 안된다는 역차별을 해서는 안될 것이다.

더구나 참가자격을 제한할 경우 마땅한 인수자를 찾지 못해 공기업민영화 일정이 더 늦어질 가능성이 높으며,자칫 특정기업에 넘기려 한다는 의혹마저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신국환 산업자원부 장관은 최근 "한중의 주인을 찾기 위한 민영화 과정에서 일정규모 이상의 기업들은 참여시키지 않는다는 방침을 정했다"고 밝혔는데,고질적인 공기업의 비효율을 제거하기 위한 방안으로 주인 있는 민영화를 결정한 마당에 굳이 주인자격을 제한하고 토를 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으며 민영화 취지를 반감시킨다고 본다.

정부는 한중의 전략적 제휴선으로 GE와 웨스팅하우스라는 해외 거대기업을 선정했는데,유독 국내 대기업들만 한중인수전에 참여해선 안된다는 역차별은 납득하기 어렵다.

게다가 정부와 대우채권단이 대우자동차 인수자를 물색하면서 현대차와 다임러벤츠 컨소시엄의 입찰참여를 종용한 전례가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경제력 집중을 이유로 대기업 참여배제 운운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라고 본다.

정부측 논리 대로라면 대우차를 인수하면 괜찮고 한중을 인수하면 경제력 집중이 심화된다는 어처구니 없는 얘기가 된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대기업 입찰참여를 제한하면 마땅한 한중 인수자를 찾기 어렵다는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정 안팔리면 마지못해 대기업에도 참여를 허용하겠다는 식의 접근자세는 곤란하다.

"1차로 제한경쟁 입찰을 실시한 뒤 주인이 선정되지 못하면 원점에서 또다른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는 신 장관의 발언이 바로 그런 예다.

공연히 시간만 끌다가 매각시기를 놓치면 기업가치만 떨어지고 안팎으로 개혁의지를 의심받게 될 뿐이다.

그런데도 혹시 비난여론이 있을까 눈치를 살피며 대기업의 한중 인수를 원천봉쇄하려는 것은 책임있는 정책당국이 취해야 할 자세가 아니라고 본다.

정부가 하는 일이 매사가 이런 식이니 지난 2년동안 공기업 민영화나 기업·금융 구조조정이 지지부진 했던 것은 당연한 결과다.

''주인 있는 민영화''라는 취지에서 볼 때 행정당국은 국내 대기업들의 한중입찰 참가를 막아서는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