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갑영 < 연세대 경제학 교수 >

대우자동차의 매각이 아직도 혼미를 거듭하고 있다.

비록 GM이 인수를 위한 실사를 시작했다고 하지만,''포드의 악몽''으로 불안감은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오히려 GM은 가격을 대폭 낮추고,수익성있는 공장에만 관심을 보일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좋은 조건으로 일괄매각하는 것은 물건너갔고,벼랑으로 몰려 어떤 조건이라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 가시화되고 있다.

게다가 협상대상자도 GM 하나밖에 없으니 채권단의 강박감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어쩌다 지난 2년을 허송하고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그저 GM의 처분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국민들의 모습이 안타깝기만 하다.

마치 탈출구가 없는 수렁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 같다.

그렇다고 헐값에라도 빨리 매각하는 것이 최선의 대안인가.

오히려 그것은 최악의 선택일 가능성이 높다.

국부유출이나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차치하고라도,매각조건에 따라서는 멀쩡한 국내 기업에도 엄청난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인가.

금융시장은 물론 관련산업과 노동시장에 심각한 파장을 불러올 수 있다.

''부실경영'' 못지않게 ''부실매각''을 방치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문제의 대우차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이제라도 몇가지 확고한 원칙을 세워야만 한다.

우선 정부가 어떤 원칙으로 처리하겠다는 분명한 정책방향을 밝혀야만 한다.

막연하게 며칠까지 정리하겠다는 면피성 방침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국내 자동차산업의 미래에 대한 비전이 함께 담긴 처리방안을 천명해야 한다.

자동차산업을 어떤 방향으로 육성하겠다는 목표와 전략이 있고,그 틀 안에서 대우차의 처리문제를 거론해야 하지 않겠는가.

따라서 자동차산업의 전략과 미래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채권단이 적당히 알아서 처리할 문제가 아니다.

지금 몇푼을 더 받고 덜 받느냐도 궁극적인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미래에 대한 전략적 비전이 있어야만 채권단의 행보도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포드에 당한 것도 아무런 전략과 비전도 없이 구속력 없는 가격표에 매달린 결과가 아니겠는가.

이번에도 시한부 조기 매각에만 급급한다면,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우선 부실매각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채권단이 전문가를 활용하여 대우차의 생존능력과 잠재적 가치를 평가해야 한다.

매수자가 제시하는 인수가격에 끌려다니지 말고,대우차의 미래와 기업가치 향상을 위한 대안을 채권단이 먼저 파악해야 한다.

이런 평가가 선행되어야만,받고자 하는 최저 유보가격이라도 설정할 수 있지 않겠는가.

유보가격보다 낮은 수준에서는 누구에게라도 매각하지 않고,독자경영할 수도 있다는 의지를 밝혀야 한다.

이것은 협상력을 크게 하는 수단도 된다.

반면 시간에 쫓긴 부실매각은 국내 자동차산업의 경쟁력을 위협하는 첩경이다.

인수업체에 월등하게 유리한 금융여건을 만들어주어,건실한 국내 기업마저 위태롭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보가격도 받지 못한다면,차라리 다른 대안을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면,법정관리나 위탁경영을 통해 일정기간 대우차의 기업가치 제고에 모든 역량을 집중시킬 수도 있다.

지난 2년처럼 며칠 뒤면 매각될 기업이라고 내팽개치지 말고,당장 강력한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한다.

그래야만 기업가치를 한 푼이라도 더 올릴 수 있고,미래의 생존능력도 커질 수 있다.

왜 부실한 상태로 조기 매각하려고만 하는가.

기업가치는 경영여건과 산업환경에 따라 수시로 변화한다.

우리 손으로 부실을 정리하고 경영을 정상화시킬 수 있다면,기업가치는 크게 올라갈 수도 있다.

좋은 조건으로 일괄매각할 수 있다면 그보다 바람직한 최선의 대안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매각조건이 여의치 않다면,자동차산업의 미래를 위한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매각여부와 관계없이 당장 오늘부터 대우차의 기업가치를 제고시킬 수 있는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한다.

그러한 노력 없이 GM만 쳐다보다가는 또 다시 지난 2년의 실패를 되풀이하게 된다.

부실매각에 쏟는 심혈을 자동차 산업의 미래를 위한 전략으로 바꾸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