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원 김홍도(1745∼1806)와 혜원 신윤복(1758?∼1820?)은 학자군주 정조가 주도한 조선조 문예부흥기의 대표적 화가다.

진경시대(1675∼1800)라는 같은시대를 살고 풍속화라는 비슷한 부문을 완성했지만 두 사람의 작품세계는 상당히 다르다.

단원이 풍속화와 산수화,사군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그림을 그린데다 풍속화에서조차 산수와 시정의 조화를 꾀한 데 비해 혜원은 인물 중심의 보다 자유분방한 그림들을 남겨 놓았다.

봄길의 나그네가 홀연히 들리는 꾀꼬리 소리에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보는 광경을 담은 단원의 ''여상청앵''은 인물과 주위풍경이 하나로 어우러져 보는 사람을 그윽하게 한다.

''금강산도''와 ''남해관음''은 장르에 관계없이 능했던 단원의 천재성을 전한다.

반면 혜원의 풍속화는 난만하고 흥건한 시정 풍속을 실감나게 보여줌으로써 시대말의 사회풍조를 가감없이 전한다.

''춘색만원'' ''상춘야흥'' ''주유청강'' ''거막거배'' ''월하정인'' ''쌍검대무'' 등은 당시 상류층의 흐드러진 생활상을 적나라하게 나타낸다.

두 사람의 화풍이나 소재가 이처럼 구분되는 건 삶의 궤적이 확연하게 차이났기 때문이다.

단원은 화원집안에서 나지 않았으면서도 20대에 이미 화명을 떨치고 정조의 총애로 평생 특별대우를 받았지만,신윤복은 아버지 신한평이 도화서 화원이었던 탓에 왕의 근처에도 못가본채 외방에서 일생을 마쳤다.

따라서 단원은 생활과 그림 모두 사대부적 면모를 견지한 반면 혜원은 여색과 춘의를 다룬 파격적인 작품을 그려놓고 있다.

혜원의 생몰 연대가 불분명하고 사서에서의 언급이 적은 것도 이런 까닭이다.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의 단원·혜원 특별전(29일까지)은 바로 이 두사람의 성향을 비교 감상할수 있는 귀한 자리다.

혜원의 경우 간송미술관 소장품을 제외하면 남아있는 게 거의 없고 단원의 명작 또한 대부분 간송것인 만큼 이런 기회가 아니면 두가지 실물을 함께 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미술관 뜰엔 국화와 모과 향기도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