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홍상화

"장지는 어디로 정하셨습니까?"

천 형사가 진성호에게 또다시 물었다.

뒤에서 문상객이 기다리는데도 천 형사는 좀처럼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진성호의 목소리를 ''고릴라''가 확인할 기회를 만드는 것 같았다.

"벽제 가족묘지입니다.혹시 장지까지 오실 예정이십니까? 공직에 계시는 분이 그렇게 한가하시지는 않을 텐데요"

진성호가 또박또박 말했다.

"같이 온 두 분은 누구신지요? 죄송합니다.잘 기억나지 않아서요"

진성호가 두 청년을 보며 말했다.

두 청년 중 특히 ''고릴라''가 당황해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진성호가 두 청년에게 다시 물었다.

"''고릴라''와 ''침팬지''라고 하면 기억이 나시겠습니까?"

청년이 대답하기 전 천 형사가 이제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말했다.

진성호는 잠깐 생각에 잠기는 척했다.

"아,그러니까…신문에 실린…그 두 분입니까?"

진성호가 그들 두 청년의 손을 두 손으로 한 손씩 잡으며,마치 은막의 대스타를 만난 행운이라도 잡은 듯 반가워했다.

천 형사가 혼란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두 분을 존경합니다.사회의 아주 위험한 흉기를 제거하셨다면서요…"

진성호가 마치 천 형사에게는 들리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처럼 두 청년에게 나직이 말했다.

"폭행죄는 별 것 아닙니다.하여튼 존경하는 두 분을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진성호가 또다시 나직이 말했다.

천 형사는 아마도 화를 참지 못해 그런지 가쁜 숨을 내쉬며 두 청년을 데리고 빈소를 나갔다.

진성호는 다음 문상객을 맞았다.

똑같은 검은색 투피스를 맞춰 입은 것처럼 보이는 다섯 명의 여자가 한꺼번에 빈소에 들어왔다.

그들은 과거에 아내와 함께 만나본 적이 있는 아내의 친구들이었다.

고급 백화점에서 구입했을 외제 옷이라서 그러하기도 하겠지만,검은색 옷으로 온몸을 싸놓으니 그런대로 평상시와는 달리 정숙한 여자들로 보였다.

"정숙이 부모님께 조의를 표하고 싶은데…어디에 계시는지요?"

한 여자가 물었다.

"처가 식구들은 집에 계십니다.너무 상심하셔서요…"

진성호가 말했다.

그들이 나가자 방명록을 관리하던 직원이 그에게 메모를 전해주었다.

진성호는 접힌 메모지를 펴서 내용을 읽기 시작했다.

''어느 모텔에서 두 청년에게 폭행을 사주한 자의 목소리가 진 회장의 목소리와 같다는 진술을 받아냈소.앞으로 10분 동안 복도에서 기다릴 테니 진 회장이 할 말이 있으면 얘기할 기회를 주겠소.천 형사''

진성호는 메모지를 주머니에 넣었다.

그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올랐다.

천 형사가 자신의 여동생이 미망인이 되었기 때문에 악에 받쳐 있는 것은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그러나 마치 정동현을 진성호 자신이 직접 살인이나 한 것처럼,그리고 정동현의 못된 행실은 불문에 붙이면서 빈소에까지 와서 ''고양이가 쥐 잡듯이'' 자신을 몰아세우려 드는 천 형사가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