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애 < 건축가 / 서울포럼 대표 >

수원의 화성.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우리의 자랑스런 문화유산이다.

그러나 화성은 단순한 ''아름다움'' 그 이상이다.

화성은 ''신도시 비전''으로 태어난 위대한 작품이다.

때는 18세기 말,정조대왕의 비전이 펼쳐질 때였다.

조선조 숙종-영조-정조대로 펼쳐지는 후기 르네상스시대의 꽃이 화성이라는 신도시로 피어났다.

경제 산업 정치 국방 기술 문화 등 다각적인 정책이 화성에 반영됐다.

수원은 말 뜻 그대로 ''물 많은 평원''으로 농업이 활발하다.

그 물 관리를 위해서 수원에는 저수지와 유수지의 본격적인 수리사업이 펼쳐졌다.

생업을 가진 안정된 정착인구를 유치하기 위함이다.

신도시만 짓는 것이 아니라,인구를 유치하고 환경을 보전하는 동시에 활용하는 정책이었다.

수원은 또 중국 일본과의 물자교류가 활발한 지역이었고,육로 또는 한강을 통해 수로로 들어오는 물자의 유통 요지이기도 했다.

정조는 수원에 이를테면 ''물류단지''를 조성하고 그 물류사업 운영에 대한 사업 인센티브를 주어 ''국제적 상업도시''로서의 기틀을 마련했다.

정조는 화성을 ''제2의 행정도시''로 만들고자 했고,행정의 신수도로 만드는 구상도 깔려 있었다는 짐작도 가능하다.

상당한 행정기능을 부여해서 한양에 집중된 파워를 분산시키는 동시에 화성에 걸맞은 행정위상을 부여하고자 했다.

또 화성은 국방의 요충지로 구상됐다.

수도권에 방위군을 재배치한 것이다.

한양은 남한산성과 북한산성으로 외곽 방어선이 쳐진 셈이었는데,그 방어선을 확장한 것이다.

정예 근위대를 이 지역에서 육성하기도 했다.

화성은 당대 기술의 집대성이자 신기술 개발의 촉매였다.

''규장각''에서 키워진 많은 합리적 학자들,인문적 상상력 뿐 아니라 기술적 현실감각을 가진 학자들이 ''현장''에서 기량을 펼쳤다.

그 총책임을 다산 정약용 선생이 맡았었다.

수리기술,축성기술,전돌 생산기술 등을 총 집결,튼튼하고 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도시를 만들어 냈다.

화성은 문화적인 과정과 결과를 만들어 냈다.

화성의 ''건설보고서''인 ''화성성역의궤''는 그 당시 세계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보고서다.

글과 그림을 조합하고,기술 설명을 했으며,참여했던 모든 사람을 밝혀 공사 ''실명제''를 실시했다.

또 공사에 들어간 인력 재료 물량 시간까지 기록한 일종의 ''CM 보고서''이기도 하다.

그 뿐이랴.화성으로 행차한 ''화성능행''의 도감을 만들었는데,그 회화적 예술성은 정말 감탄할 만한 것이다.

바야흐로 ''21세기의 신도시''가 태동하고 있다.

부디 비전을 세우자.20세기에 우리가 만든 신도시들은 허겁지겁 주택부족 메우고,전세대란 막고,아파트 건설과 경기 부양하느라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택건설''이라는 단순한 볼모 때문에 교통문제 악화시키고,환경문제에 시달리고,멋지게 살만한 도시라기 보다는 아파트에 잠자러 가는 도시들이기 십상이었다.

분양가 상한선에 묶여 그 어디나 똑같이,되도록 높이,많이 짓자는 식으로 들어선 고층 아파트들로 가득 채워진 신도시였다.

21세기에도 그리 할 것인가? 신도시는 미리 차근차근 계획을 세우고 경제 산업 기술 정치 문화의 총 집합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사실 신도시 계획 수립은 이미 늦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각해 보자.계획을 수립하고,토지를 확보하고,설계하고,집 짓고,산업시설이 들어서는 데 최소한 3∼5년은 걸린다.

''번갯불에 콩 볶듯이'' 도시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실은 경제위기가 닥치고 건설경기가 빙하기에 들어갔던 3년 전에 신도시 계획을 세워놨어야 한다.

우리 사회, 부디 ''신도시 콤플렉스''로부터 벗어나자.''신도시''하면 토지가격 상승,환경문제,교통문제 연상하지 말자.어차피 필요한 도시라면 마구잡이 아파트단지 난(亂)개발 보다는 계획적인 신도시가 백배 천배 낫다.

신도시 추진은 이미 늦었지만,그래도 늦었다고 할 때가 가장 빠르다.

부디 이 시대의 ''신도시 비전''을 세우자.그리고 제대로 만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