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홍상화

황무석과 통화를 끝낸 진성호는 윗도리를 벗어던지고 넥타이를 푼 후 침대에 반듯이 누웠다.

아내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한 후 처음으로 아내가 불쌍하게 느껴졌다.

애초에 자신과 결합하지 않고 좀더 마음이 너그러운 남자를 만나 결혼생활을 시작했더라면 횡사하지 않고 제명대로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었던 여자라는 느낌이 들었다.

아내는 자기우월감에 도취되어 있고 참을성이 없는 여자이기는 하나,반면에 매사에 적극적이고 거짓말할 줄 모르는 장점도 지닌 여자이기도 했다.

만약 과거 두 번의 임신 경험 중 한번이라도 그것이 순산으로 이어졌다면 아내와 자신의 인생이 달라졌을지도 몰랐다.

과거를 따져서 무엇하겠는가!

자신의 아이를 가진 이미지라는 여자만은 불행하게 하지 않겠다고 진성호는 다짐했다.

순간 진성호는 침대 옆 탁자 위에 놓인 이미지가 남긴 메모지를 집어 다시 읽기 시작했다.

그는 불안해졌다.

편지의 마지막 줄 P.S.로 적힌 ''아니에요.혼자가 아니에요.뱃속의 아기는 항상 저와 같이 있으니까요.그래서 저는 결코 외로울 수 없어요''라는 구절을 입속으로 되뇌었다.

그것은 자신의 아기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여인의 강한 의지로 들렸다.

아기를 영원히 지닐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그것은 아기를 임신한 채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순간 진성호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탁자의 서랍을 시작으로 이미지가 친구의 전화번호를 적은 수첩을 둘 만한 곳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반시간 정도 뒤졌으나 아무 단서도 찾을 수 없었다.

문득 레인보우 클럽에서 일하는 이미지의 친구를 황무석이 알고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황무석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하는 황무석의 목소리가 들렸다.

"황 부사장님,급히 부탁드릴 일이 있어요"

"회장님,무슨 일인데요?"

"레인보우 클럽에서 일하는 이미지의 친구를 아시지요?"

"네"

"그 친구와 통화할 수 있을까요?"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황무석의 질문에 진성호는 처음에 말하길 꺼렸으나,어차피 어느 정도는 이미 알고 있었으므로 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리고 이미지가 갈 만한 시골 친구 집을 알아내고 싶다고 했다.

설명이 끝난 후 잠시 침묵이 흘렀다.

"혹시 어젯밤 회장님이 이미지씨와 같이 있었습니까?"

황무석이 엉뚱한 질문을 해왔다.

"아니오.집에서 잤어요.왜요?"

"…아닙니다…그저…혹시 어젯밤 다툰 일이 있었는가 해서요"

"근래에 다툰 일이 없었어요.이미지가 아기 문제 때문에 상처를 입은 것 같아요"

"괜찮을 겁니다.너무 걱정 마십시오.곧 연락 오겠지요.여하튼 이미지씨 친구에게 알아보겠습니다.…아기를 어머니에게 줄 작정이십니까?…그냥 궁금해서요"

"아니에요.아이는 이미지에게서 떼어놓지 않을 겁니다"

"잘 결정하셨습니다"

"이미지는 나에게 아주 소중한 여자예요.이 세상 어느 여자보다도요"

진성호는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