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철강 매각이 실패로 돌아간 직후인 4일 오후 은행회관 회의실.채권단 관계자들이 힘없는 걸음으로 들어섰다.

대우차 매각 실패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한보철강마저 원점으로 돌아간 데 대한 부담감 때문인지 어둡고 냉랭한 표정들이었다.

"왜 이렇게 안 풀립니까"

비슷한 시간 같은 건물 다른 회의장에서 진념 재정경제부 장관을 비롯한 경제장관들이 피곤한 모습으로 나왔다.

경제정책조정회의를 마치고 난 후였다.

진 장관은 이날만 벌써 세차례 회의에 참석했다.

오전 8시30분부터 경제장관간담회, 국무회의, 점심까지 이어진 4대부문 핵심개혁과제 합동보고회의.합동보고회의에서는 "장관들이 비장한 각오를 갖고 개혁을 완수하라"는 김대중 대통령의 당부도 있었다.

저녁에는 총리 주재 회의도 잡혀있다.

그러나 정신없이 끝낸 릴레이 회의의 결과는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내용이었다.

"11월말까지 2차 은행구조조정을 마무리짓겠다" "퇴출 대상기업을 연내 확정하겠다" 구조조정에 대한 의지와 호언이 이날도 변함없이 반복됐을 뿐이다.

문제는 현실이 따라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량은행 합병만 해도 장관들이 되뇌는 10월 가시화에 대해 은행장들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우량은행 합병의 열쇠를 쥐고 있는 주택은행은 3일 뉴욕증시에 상장돼 경영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오는 합병을 2~3개월 안에 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은행장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말하지만 장관들은 하나같이 10월 합병가시화를 장담하고 다닌다.

대우차 매각이 실패한 후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과 엄낙용 산업은행총재는 9월말까지 입찰제안서를 다시 받아 10월말까지 매각을 끝내겠다고 발표했지만 이 역시 현실과는 동떨어진 ''호언''으로 끝나가고 있다.

4대부문 합동보고회의가 끝난 뒤 브리핑을 맡은 재경부 실무자의 설명이 차라리 솔직하게 들려왔다.

"그동안 수차례 발표된 내용이지만 정부가 구조개혁 의지를 다시 한번 강조하기 위해 원칙과 일정을 명확히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김인식 경제부 기자 sskis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