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가 20일 서울에서 개막된다.

바늘에 실 가듯 비정부기구(NGO)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는 소식이다.

99년 시애틀 세계무역기구(WTO)총회 이래 NGO의 시위가 과격한 양상을 띠어왔기 때문에 사람들의 긴장은 조건 반사적이다.

이른바 ''세계화''는 지구촌 강대국의 ''몰인정한'' 경제지배논리를 그럴싸하게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 NGO의 시각이다.

선진국들이 WTO와 다자간투자협정(MAI)등을 통해 저개발국가들을 상대로 노동착취와 오염배출산업의 이전을 추구하는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과연 그런가.

미 국제경제연구소(IIE,프레드 버그스텐 소장)의 시니어 펠로인 에드워드 그램은 ''잘못된 주적(主敵)(Fighting the Wrong Enemy)''이라는 최근 저서를 통해 "NGO의 주장이 전혀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 主敵 선정에는 결정적 결함이 있다"고 지적했다.

우선 NGO가 극렬 반대하고 있는 MAI는 ''선진회원국들 특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회원국들끼리의 상호투자''를 어떻게 규정하고 관리할 것인가를 논의한 것이었다는 게 그램의 설명이다.

''선진국의 대(對)개도국투자 문제''는 아예 협상대상에 포함되지도 않았다는 얘기다.

그런 의미에서 MAI에 대한 NGO의 반대는 실체가 없는 대상에 대한 반대였고 따라서 ''주적 선정''이 잘못됐다는 설명이다.

필리핀 앞바다에 태풍이 형성되지도 않았는데, 유리창 깨질까봐 방어용 널빤지 못질부터 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설명이다.

특히 95년부터 98년까지 진행된 협상에 참여했던 각국 대표들은 자기쪽에 유리한 예외조항을 협정에 끼워넣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으며 그 결과 협정초안은 예외조항으로 가득찬 ''현상유지(status quo)협정''에 불과했다는 것이 그램의 주장이다.

사회발전수준이 거의 엇비슷한 OECD선진국들간의 투자협정 협상도 이같이 난관이 많아 결국 중도에서 폐기되고 말았는데 사회 법률 제도적 인프라의 격차가 더 큰 선진국과 개도국간의 협상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고 따라서 협상대표들은 이를 다룰 엄두조차 내지 않았다는 것이 그램의 설명이다.

결국 "MAI가 저개발국에 대한 노동착취와 환경오염을 가속화할 것"이라는 NGO의 인식과 반대시위는 "시위를 위한 시위였다"는 것이 ''잘못된 주적론''의 요지다.

아직 시중에 배포되지 않은 ''잘못된 주적''은 NGO가 우려하는 노동착취문제도 강자지배 논리적 시각에서만 볼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지구촌의 빈곤과 기아는 모든 인류의 공통과제다.

하지만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돌파구는 결국 경제성장을 통해서 풀 수밖에 없고 결국 선진사회가 가지고 있는 자금과 기술을 덜 선진화된 사회로 이전하는 것 외에 다른 뾰족한 대안이 없다는 게 그램의 견해다.

선진국들이 개도국 노동자를 착취하고 있다는 것이 NGO의 주장이지만 선진국 기업이 저개발지역에 진출해 지급하는 평균임금은 내국기업이 주는 임금의 1.5배에 이른다는 세계은행의 통계를 ''잘못된 주적''은 인용하고 있다.

지구촌화의 진전에 따라 환경이 파괴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생존문제를 제쳐둔채 환경보호만을 중시할 수도 없는 일이라는 게 ''잘못된 주적''의 견해이기도 하다.

명문 MIT와 듀크대등에서 교수를 지낸 그램은 79년부터 82년까지 미 재무부와 OECD기획평가국에서 일한 경험이 있을 뿐 아니라 서울대학교 국제지역원에서 정규과목을 강의한 경험도 있는 워싱턴의 보기 드문 한국통이다.

그런 그가 ASEM회의를 전후해 이미 ''죽은 협정''이 돼버린 MAI를 반추해가며 ''반(反)세계화운동''에 대한 나름대로의 견해를 정리한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로 평가될수 있을 것이다.

양봉진 워싱턴특파원 www.bjGlob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