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홍상화

천 형사는 진성호가 서 있는 계단에서 두 계단 위쪽에 서서 이제까지의 겸손했던 태도를 바꿔 위압적인 자세를 취하며 진성호를 내려다보았다.

"알고 있으시지요?"

천 형사가 기분 나쁜 미소를 띄우면서 다시 물었다.

"알고 있소.정동현이란 자는 만난 일은 없어도 텔레비전에서 본 적이 있소.그자가 아내와 사고 당일 호텔에 같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답하기를 거부하겠소"

"그럼,정동현씨가 그 후 서울 근교 모텔에서 두 괴한에게 폭행당한 사실은 아시는지요?"

"신문에서 읽었소"

"그럼 정동현씨가 그 사건으로 성기능 불능자가 되었다는 사실도 아시겠군요.그리고…며칠 전에는 자살을 했다는 사실도 아시겠고요"

진성호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정동현을 성불구자로 만든 두 괴한을 체포하는 것은 시간 문제입니다.그자들이 그들에게 불리한 증거를 너무나 많이 남겼더군요.예컨대 언론사와 주간지에 보낸 편지가 그런 증거입니다"

"그렇다면 나하고 얘기하면서 시간을 허비할 게 아니라 그자들을 빨리 체포하도록 하시오"

"그자들이 이정숙씨를 친 자들과 동일범일 가능성이 짙습니다"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겠지요.여하튼 그자들이 빨리 체포되기를 바라겠소"

진성호는 다시 층계를 내려갔다.

천 형사가 몇 계단 뒤에서 따라 내려왔다.

"그런데 문제는 범행동기에 있어요.어떤 범죄나 동기가 있어야 하니까요.정동현을 성불구자로 만들고 이정숙씨를 죽이고 싶은 동기를 가진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세요?"

진성호가 그 자리에서 뒤돌아 천 형사를 올려다보았다.

천 형사가 간교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진성호는 자기의 가슴을 손바닥으로 두어 번 쳤다.

"나요,나 진성호요.내가 그런 동기를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오.그러나 잘못 짚었소.나는 그렇게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오.수사계통에서는 몰라도 사업판에서는 어리석은 자들은 살아남을 수 없소…당신네 같은 형편없는 머리로는 범인을 잡기는 그른 것 같소"

말을 마친 진성호는 층계를 뛰어내려갔다.

"당신은 막다른 골목에 와 있어.시간 문제지 당신은 우리 손안에 꼭 잡히게 되어 있어"

천 형사가 이제는 반말로 소리쳤다.

진성호가 싫은 소리를 좀 하긴 했지만 천 형사의 갑작스런 감정폭발이 놀라웠다.

진성호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층계를 내려갔다.

"너희 재벌들은 신문쟁이들과 마찬가지로 법을 지키지 않아도 될 것 같지? 천만에! 너희 재벌들 버릇을 고쳐놓을 때가 되었어.하늘에 맹세하지.내 손으로 직접 너에게 쇠고랑을 채울 거야"

천 형사의 악에 받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천 형사의 그런 태도가 이해되지 않았다.

진성호는 뒤돌아보지 않고 계속 층계를 뛰어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