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교육이념으로 단군신화의 ''홍익인간''이란 글귀를 채택한 것은 1946년 초 미군정청 교육심의회에서였다.

정부수립 직후 단군의 고조선 건국을 기리는 개천절이 국경일로 제정돼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건국초에는 한때 단군신화에 근거한 배달문화론이 고취되기도 했다.

특히 70년대 후반부터 10여년 동안은 단군이 신화속의 인물이 아니라 역사적 실체라는 국수주의적 재야사학자들의 주장이 기승을 부렸다.

우리 역사학계의 최근 연구결과를 종합해 보면 단군은 고조선을 건국한 시조인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단군은 자연인의 이름이 아니라 군장과 제사장을 겸한 임금을 나타낸 칭호로 본다.

단군이야기가 신화적인 형태로 표현된 것은 정치권력 질서를 정당화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고 해석한다.

북한에서는 단군신화를 통치계급의 사상을 반영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단군신화가 고조선 건국신화이고 단군이 건국시조라는 것을 인정하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후반부터였지만 그때도 단군이 한민족의 원시조였음은 부정했다.

고조선의 발상지도 요동지방으로 보았고 건국연대를 기원전 24세기께로 보는데도 소극적이었다.

그러나 93년 ''단군릉'' 발굴을 계기로 북한 역사학계의 인식이 완전히 바뀌었다.

고조선이 반만년 전에 민족의 원시조 단군에 의해 평양에서 수립된 민족사의 첫 고대국가이며 대동강유역이 세계4대문명발상지와 함께 문명을 꽃피운 다섯번째 인류문화발상지라고 주장하고 있다.

단군숭배는 단연 북한이 남한을 압도하게 됐다.

4332주년 개천절 경축분위기는 예년과 달리 활기차 보인다.

그제는 단군 복장을 한 대학생들이 가두행진을 벌였는가 하면 뜸하던 재야사가들의 학술발표회도 눈길을 끈다.

KBS TV가 ''고조선과 단군신화의 실체''를 주제로 한 2부작을 내보냈고 평양에서는 남북학자들이 단군학술회의를 갖는다.

흔히 단군문제는 민족정체성 확립의 근본요체라고들 한다.

하지만 북한이 단군릉을 만들고 개천절을 봉축하기 시작한 것만으로 통일의 공통분모를 찾은 듯 날 뛰는 것도 성숙한 자세는 아닌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