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홍상화

"그건 당신들이 할 일 아니오? 나는 전문가가 아니오"

진성호는 건방지게 나오는 형사들의 태도가 계속 못마땅한 나머지 불쾌한 어조로 되받았다.

"그럼,이정숙씨가 당한 자동차 사고가 고의적 사고라는 가정하에 저희들이 용의선상에 올렸던 사람을 말씀드리겠습니다…김명희씨…"

천 형사가 말을 끌었다.

"이미지씨도 이제는 용의선상에 올려야지요"

아까 진성호에게 턱을 얻어맞은 형사가 말했다.

천 형사가 손을 내저었다.

"이미지씨는 이정숙씨가 자동차 사고를 당했을 당시는 상관없는 사람이었지요"

턱을 맞은 형사가 다시 말했다.

진성호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신들…무슨 권리로 내 뒤를 캐고 다니는 거요? 이건 명백한 사생활 침해요"

"우리도 이정숙씨 사고를 일단 우발사고로 판단해 뺑소니차 운전사를 찾고 있는 중이지만 고의적인 사고라는 가정을 영영 버린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용의자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이미지씨가 대두되었습니다…"

"그럼 당신들에게 중요한 정보를 한 가지 더 주겠소.이미지라는 여자가 지금 내 아이를 가졌소.만일의 경우 당신들의 잘못으로 이미지가 유산이라도 한다면 나는 무슨 짓을 해서든,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든 당신 모두를 파멸시킬 거요"

진성호는 말을 마친 후 뒤돌아서 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때 문 옆에 서 있던 두 형사가 그를 막아서자 진성호는 가쁜 숨을 내쉬며 그들 둘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천 형사가 고개를 끄덕이고서야 두 형사가 비켜섰다.

진성호는 문을 열고 한 발자국 문 밖으로 내디디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나는 지금 기업을 살리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사람이오.당신들하고 이런 허튼 소리를 하면서 허비할 시간이 없소.앞으로 나하고 얘기하려면 구속영장을 가지고 와서 하시오.그리고 당신들은 지금부터 미친 듯이 뛰어다녀 아내를 살해한 자를 찾도록 하시오.당신들 말대로 그 일이 4시 반에서 5시 반 사이에 일어났다면 범인은 아마 멀리 못 갔을 거요.빨리 추적하시오.지금 이렇게 한가하게 쓸데없는 망상을 하거나 엉뚱한 사람을 괴롭힐 시간이 없소"

진성호는 말을 끝내면서 사무실 밖으로 나와 문을 소리나게 닫았다.

진성호는 복도를 성큼성큼 걸어가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엘리베이터는 13층에 선 채 그대로 있음을 표시등이 알려주었다.

진성호는 복도 옆에 있는 비상계단으로 연결된 문을 열었다가 다시 닫고 민 박사의 사무실을 향해 다시 복도를 걸어갔다.

진성호는 민 박사 사무실 문을 노크도 하지 않고 열었다.

안에 있던 네 사람이 그에게 시선을 보냈다.

"민 박사님,어려운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로비에서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저는 지금 아내가 살해되었다고 말할 용기가 없습니다.
죄송하지만 민 박사께서 아내가 갑자기 병세가 악화되어 숨을 거두었다고 해주십시오"

"예,그렇게 해드리지요"

민 박사가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