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영 < 아주대 환경도시공학 교수 >

계절병인가.

가을바람이 불면서 수도권 지역의 전세값이 뛰고 있다.

집없는 서민들의 주름살이 늘게 됐다.

그동안 우리는 ''전세''라는 독특한 제도가 있어 집값이 올라준 만큼 서민들의 주거비 부담이 경감됐다.

그런데 나라경제가 온통 흔들거리고 있으니 전세시장이라고 얌전할 수 있겠는가.

서민들의 주택 구매력은 줄고 전세값은 물가따라 춤추게 된 것이다.

이런 와중에도 지금 주택시장에는 아파트의 호화·대형화 추세가 완연하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50평 정도면 상류주택 행세를 했는데,이제는 80평 또는 1백평이 넘는 아파트,주상복합,빌라들이 줄줄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모델하우스에 가보면 이탈리아제 대리석이 깔려 있고,외제 냉장고와 세탁기,심지어 초대형 텔레비전까지 등장한다.

그래서 20억원이 넘는 아파트도 많다고 한다.

오래된 아파트는 재건축해 20∼30평 짜리들이 50∼60평대로 탈바꿈하고 있다.

핵가족화에 따라 가족 규모는 점점 작아지고 있는데 집 규모는 커지고 있는 것이다.

서울뿐 아니라 수지 분당 등 용인지역에도 이제는 작은 평수보다 큰 평수들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정말 우리가 이처럼 잘 살게 된 것일까.

IMF로 인해 빈부 격차가 더 심해진 것이다.

나라 전체적으로 소득수준은 낮아졌지만,전시에도 부자는 생기듯이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됐다.

그래서 IMF 이후 우리나라 고급자동차의 덩치가 더 커졌고,일류 백화점의 명품점들이 호황을 맞고 있는 것이다.

집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전통적인 민가는 ''초가삼간''이란 말로 표현돼 왔다.

이 말의 근원을 더듬어 보면 자연 속에서 안빈낙도(安貧樂道)를 추구하던 탈욕(脫慾)사상과 부딪치게 된다.

민속사가 신영훈 박사의 조사에 의하면 초가삼간은 5∼6평 정도의 크기였다고 한다.

우리 서민주택은 그만큼 옹색하고 초라했다.

그러나 어느 나라,어느 시대건 세도가들의 집 사치는 본능적이다.

명당에 집터를 넓게 잡고 고루거각(高樓巨閣)을 덩실하게 짓고 살고 싶은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신라 때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주택규모에 대한 많은 규제와 법령이 있었다.

계급사회였으므로 신분에 따라 엄격하게 대지와 주택규모는 물론 높이 등도 상한선을 그어 이를 지키도록 했다.

집 사치의 욕망은 졸부일수록 강한 법이다.

크기뿐 아니라 내장에도 사치가 흐르게 마련이다.

이런 집의 실내일수록 몰개성적이다.

우리의 주거문화는 개성이고 뭐고 없이 획일화되고 있다.

고층아파트와 빌라트,주상복합,그게 그거인 형태로 개성이 자리잡을 구석도 없다.

단지 크기만 다를 뿐이다.

그래서 더 크게,더 크게 짓는 것일까.

서울의 주택보급률은 70%에 지나지 않는다.

수도권이 78%다.

1백평짜리 하나보다 25평짜리 네 채가 더 소중하다.

그러나 작은 아파트의 구매수요는 바닥인데 비해 졸부들의 욕구는 더 커진 것이다.

게다가 아파트 단지를 조성할 때 일정 비율의 소형 아파트공급을 의무화했던 규정도 없애 버렸다.

당연히 업자들은 ''돈되는 선택''을 하게 마련이다.

부자나라인 일본의 집들은 초라하다.

어느 외국인이 ''일본인들은 토끼장에서 산다''고 표현한 적이 있다.

도쿄에서 만난 관광안내인이 말해준 바로는 일본인들은 친구집을 방문하거나 서로 초대하는 일이 거의 없고,문상갈 때 비로소 가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집이 비좁기 때문이란다.

''맨션''이란 말이 붙은 회사 중역의 집들도 20평 내외라고 한다.

요즘 과소비와 함께 나타나는 우리사회의 집사치는 도를 넘고 있다.

택지 상한제마저 폐지됐다.

아무리 큰 집의 재산세라도 몇 푼 되지 않는다.

부유 계층에 대해 우리 제도는 너무 너그럽다.

집사치를 법으로 다스릴 수는 없겠지만 세제의 균형을 잡아주고 복지 차원에서 서민들의 전세값 걱정을 덜어주는 것은 정부의 몫이다.

나라 경제가 삐꺽이고 전세대란으로 서민들이 전전긍긍하는데 여기저기서 고개를 내미는 호화아파트는 ''20대 80의 사회''가 눈 앞에 온듯한 섬뜩함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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