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세계 패션계는 온통 영국 물결로 뒤덮이고 있다.

스코틀랜드의 타탄(체크)과 아가일(다이아몬드 형태의 무늬)등 전통 문양이 디자이너들의 사랑을 받고 있고 캐시미어 제품은 품절사태를 빚을 정도로 인기다.

한물 간 브랜드로 여겨졌던 버버리가 다시 유행의 중심에 올라섰으며 엔필 아큐아스큐텀같은 영국 태생의 브랜드들에 세계인의 눈길이 모아지고 있다.

이같은 영국의 ''패션계 제패''소식에 의아해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영국인의 이미지가 화려한 멋과는 거리가 멀기도 하지만 그동안 ''패션''하면 먼저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떠올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도 요즘에는 영국패션의 ''왕위등극''을 인정하는 모습이다.

프랑스 패션의 대표주자인 크리스찬디올과 지방시는 수석디자이너 자리를 영국인 존 갈리아노와 알렉산더 맥퀸에게 각각 내줬다.

프랑스의 유명한 패션하우스 클로에의 디자인실은 가수 폴 매카트니의 딸인 스텔라 매카트니가 차지했다.

이탈리아는 자존심을 버리고 리포터,CP컴퍼니처럼 영국냄새가 풍기는 브랜드를 새로 만들어낼 정도다.

어떻게 이 멋없는 섬나라가 패션의 메카로 떠오를 수 있었을까.

영국 패션비즈니스 전문지 드래이퍼스 레코드는 최근호에 ''베스트 오브 브리티시''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그 원인을 분석했다.

첫째는 영국 의류회사들이 오랜 불황의 세월동안 살아남기 위해 치열한 가격다툼과 프로모션 전쟁을 거치면서 전리품으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는 것.

또 펑크족과 같은 거리문화에서 나오는 자유분방함이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디자인 창작의 원천이 됐다는 점을 꼽았다.

그리고 소재의 트렌드가 때마침 울이나 캐시미어같은 영국정통의 섬유로 돌아온 것도 성공의 밑거름중 하나라고 풀이했다.

어떤 전문가는 영국 정부와 교육기관,기업들이 손을 맞잡고 이뤄낸 산학협동의 결과라는 의견도 내놓고 있다.

실제 런던의 패션학교인 ''센트럴 세인트 마틴즈''의 졸업작품 발표회는 언제나 일류 디자이너와 의류업체 사장들로 객석이 빼곡히 메워진다.

실력있는 신인 디자이너들의 스카우트를 위해서다.

또 백화점들은 디자이너코너를 마련해 놓고 정기적으로 제품을 사들여 군소 브랜드의 주머니를 채워준다.

대부분 가족잔치에 그치고 마는 우리나라 대학의 졸업작품전과 패션 발전에는 별 관심없이 수수료만 챙기는 국내 백화점들과는 대조적이다.

재미있는 것은 런던이 세계 패션의 중심지로 주목받으면서 요즘 그림과 음악 음식까지 영국 것이 최고로 인식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영국 요리사를 두고 있는 이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맛없기로 유명한 영국음식이 출렁이는 패션의 물결을 타고 ''가장 감각있는 요리''로 올라서게 된 건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s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