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국제원자력기구(IAEA)본부에는 유독 한국인 직원들이 많다.

정부에서 파견나온 인력을 제외하더라도 17명에 달한다.

한국인 직원이 5명이상인 국제기구가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독보적인 수준이다.

전풍일 IAEA원자력발전국장은 "IAEA에 한국인 직원이 많은 것은 원자력분야에서 한국의 위상이 그만큼 높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 국장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지난 18일∼22일 열렸던 IAEA총회에서 한국은 ''선진국''이었다.

여러 참가국들로부터 수많은 기술협력 제의를 받았고 원전을 건설하려는 국가들도 우리와 손을 잡기를 원했다.

그러나 즐거운 비명속에서도 한국의 원자력계 인사들은 총회기간 내내 어깨를 펴지 못했다.

세계 원자력 산업은 퇴조의 길을 걷고 있으며 국내 사정 역시 크게 다르지않다는 자괴감 때문이다.

신규 원전건설 계획은 시민단체 등의 반대에 부딪쳐 지지부진하고 폐기물처분장 건설은 16년째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는게 현실이다.

"원유값이 배럴당 1백달러가 되면 원유를 지금처럼 쓸 수 있겠습니까.

에너지 대외의존률이 높은 한국은 결국 원자력 밖에 대안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언제까지 원자력을 외면할 건지 모르겠습니다" IAEA 한국대표단으로 참석한 한 인사는 "우리가 하루에 쓰는 원유량은 2백만배럴에 달한다"며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원전은 매일 50만배럴의 원유를 생산하는 유전과 맞먹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인사는 "체르노빌 사고와 같은 비극은 지금의 원자력 기술에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다"며 "전문가들이 인정하지 않는 위험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들에게는 한국이 원자력 강국이 될 기회를 원자력에 대한 국내의 부정적 인식때문에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안타까움이 가슴 한쪽에 자리잡고 있었다.

유럽의 부국인 오스트리아가 산유국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유가상승을 주도하고 있는 석유수출국기구(OPEC)본부도 빈에 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는 전기료가 세계에서 가장 비싼 나라중의 하나다.

저녁이 되면 빈의 주택가와 웬만한 상가가 어둠에 뭍혀버리는 것도 이같은 이유다.

오스트리아는 원자력을 포기하고 원자력발전소를 갖고 있는 헝가리 등에서 비싼 전기를 수입하고 있다.

반면 우리는 원자력발전소 덕분에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수준의 가격으로 전기를 사용하고 있다.

요동치는 국제 유가와 어둠에 싸여있는 빈의 거리를 보면서 원자력이 주는 편익과 위험성을 어떻게 조화시킬지에 대해 이제는 국민적 합의가 필요한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빈(오스트리아)= 김태완 정보과학부 기자 tw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