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에 논란이 됐던 SK텔레콤과 신세기통신의 기업결합은 공정위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시금석이 되었던 사례였다.

당시 소비자 후생의 입장에서 이 결합의 문제에 대한 논란이 많았다.

공정위는 이 건에 대해서,''이 결합이 효율성증대 효과보다 경쟁제한 효과가 더 크다''는 스스로의 분석에도 불구하고 주식매각 등 실질적 결합 취소를 명령하기보다는 ''시장점유율 50%이내 유지''라는 조건을 전제로 결합을 인정했다.

물론 이는 기업결합에 대한 사전심사제가 없는 우리 제도상의 허점과 관련해 ''이미 결합된 회사를 다시 분리시키기에는 부담이 된다''는 것이 작용했다는 점에서 이해가 가기도 한다.

어쨌든 이 허가 결정 이후 문제는 일단 수면 밑으로 잠복했다.

그러나 최근 SK텔레콤은 애꿎은 소비자만 피해를 보게 한 단말기 공급중단 결정을 내리고,또 점유율 50%이내 도달 시한을 1년 연장해 달라는 신청을 해놓고 있다.

뿐만 아니라 PCS사업자와 관련,SK텔레콤과 신세기통신으로부터 PCS로 전환한 가입자들에게 가입비를 한시적으로 면제하는 것에 대한 불공정 거래 시비가 생기는 등 통신시장의 ''공정 경쟁''문제가 다시 불거지고 있다.

이같은 문제의 발생 근원은 모두 ''원칙에 어긋나는 기업 결합 허가 결정''에 그 근원이 있다.

이런 상황 전개 하에서 공정위의 역할과 위상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가 필요하다.

우리 나라의 공정위는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분명 ''경쟁정책''을 책임지는 기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산업정책''의 부담까지 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기업 결합 건에 대한 효율성 증대 효과의 분석이,국민후생 증가라는 관점보다 개별 기업 차원에서 이득이 되는 것을 효율성이라고 인정해 준 공정위의 분석은 공정위가 특정 기업·산업의 육성이나 경쟁력제고를 걱정하는 산업정책적 사고를 하고 있다는 해석을 가능케 한다.

또 업체들간의 보조금 경쟁을 못하게 하는 것도,''과당경쟁 방지''라는 이상한 이름으로 자유로운 경쟁을 막아 기업의 이윤을 보장해 준다는 점에서 소비자가 봐선 달갑지 않은 산업정책적 사고의 산물이다.

이런 규제 사례들을 보며 생각나는 것은 기업들이 규제 때문에 못 살겠다고 하지만,반면에 많은 유(類)의 정부 규제가 사실은 규제를 통해 자신들의 이익을 도모하려는 이익 집단들이 로비를 통해 만들어낸 것이라는 경제학적 설명이다.

한국경제가 어느 정도의 추격을 달성한 지금 산업정책의 내용은 과거 특정산업·기업에 ''렌트(특별이윤)를 보장''해주는 것에서 ''경쟁의 활성화를 통한 경쟁력제고''라는 형태로 바뀌어야 한다.

선진국으로 갈수록,경쟁의 활성화가 최상의 산업정책임을 인식해야 한다.

미국에서 왜 그렇게 마이크로소프트사를 분할하려고 애쓰는지를 잘 이해해야 한다.

마이크로소프트사가 한국의 기업이었다면 한국의 대표기업으로 잘 키워야지,자본주의 경제에서 잘 나가는 기업을 왜 그렇게 분할하느냐고 야단이었을 것이다.

이런 경우를 들어 시장원리에 위배된다고 한다면,그런 이는 시장원리를 잘못 또는 반만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시장경제의 이점이란 시장방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시장경쟁에 그 원천이 있으며,시장 앞에서의 평등을 전제로 한다.

정부든 대기업이든 노조든 그 누구에 의해서든 시장이 좌지우지 된다면 경제주체들은 그런 시장에서 등을 돌릴 것이다.

공정위가 내린 ''조건부 기업결합 허가 결정''이 사전심사제가 없는 상황하에서의 고육지책이었고 또 그 결정의 무게 중심은 ''결합 허가''보다는 ''시장점유율 규제''에 있었다고 믿고 싶다.

그렇다면 공정위는 이를 그 이행여부에 대한 사후 감독의 강화를 통해 보여야 한다.

이 길만이 공정위가 스스로의 위상을 높이며 제 역할을 확실히 하는 길이다.

최근 기업 M&A가 더 활성화될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와 환경 변화가 이어지고 있다.

이 시점에서 향후 비슷한 상황의 도래에 대비,''기업 결합 사전심사제도''의 조속한 도입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klee1012@plaz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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