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에서 위인의 역할을 가장 중시한 영국의 역사가 칼라일은 저서 ''영웅 및 영웅숭배론''에서 "세계사는 근본적으로 영웅들의 역사"라고 단적으로 말했다.

그가 이처럼 강조한 영웅은 사상과 정신에 있어서의 영웅이다.

19세기의 유럽은 정치적 시민적 자유는 증대된 반면 내면적 자율성은 도리어 상실됐다고 생각했던 그는 제도 금전 여론 등 외적 환경의 속박으로부터 해방된 도덕적 자유인을 영웅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그가 말하는 영웅은 신성한 정신과 도덕적으로 고결한 인격자로서 외부적 여건에 관계없이 자신의 의지와 목적에 따라 창의성을 발휘한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탁월한 인물의 역할은 부인하지 못하면서도 그러한 위인의 의지나 목적은 필연적으로 역사적 조건에 의해 결정되지 않을 수 없다는 사회결정론자들의 견해도 있다.

헤겔,스펜서,마르크스 등으로 대표되는 이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어떤 위대한 개인이라 할지라도 역사를 새로 만들 수는 없다는 것을 전제로 위인의 능력은 시대정신,사회적 현실여건,문화 등이 허용하는 한에서 발휘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위대한 개인은 역사적 사회적 여러 세력의 대변자이며 상징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다.

사회사연구가 심화되면서 위인의 역사보다는 대중의 역사가 강조돼 군주나 지배층 중심의 역사서술도 대중중심으로 바뀌었다.

지금은 용어조차 잘 쓰이지 않지만 한국에서도 80년대에 민중사학이란 것이 휩쓴 적이 있다.

민주화운동에 끼친 민중사학의 영향도 컸다.

하지만 역사에서 어떤 때는 위인이나 영웅의 역할이 두드러지기도 하고 어떤때는 민중이 결정적인 힘을 갖기도 한다.

개인과 민중은 대립적이라기보다는 상호보완적이라 해야겠다.

KBS의 대하사극 ''태조 왕건''이 높은 시청률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덩달아 왕건은 물론 궁예 견훤을 다룬 출판물이 잇달아 출간돼 후삼국시대 영웅들이 각축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이다.

작가들이 몇몇 개인만을 영웅시해 제멋대로 신격화하면 대중은 영웅중심적 운명론적인 사고에 젖게 된다.

영웅의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