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홍상화

그런 다음 황무석은 최형식에게 이곳에 오기 전 이정숙이 입원한 병실을 방문한 사실과 이미지와 나눈 대화내용을 사실대로 차분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는 특히 이미지에게 했던 말,즉 이정숙의 사람됨됨이와 병실에서 이정숙의 코에 끼워진 산소호흡기를 뺄 생각을 자신이 순간적으로 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리고 덧붙여서 병실 주위 상황을 설명하여 산소호흡기를 빼는 것이 어렵지 않은 일이라는 사실과 내일 아침까지는 이정숙의 어머니도 없으므로 발각될 위험성도 적다는 사실이 그의 뇌리에 각인될 수 있도록 그로서는 최선을 다했다.

"이정숙이 의식을 회복하더라도 제 차 번호를 기억하지는 못할 거예요"

최형식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건 형식이 장담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그것이 사실일지 몰라도 그냥 결과를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잖아?"

"그럼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

최형식이 황무석의 의도를 파악한 듯 그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나도 잘 모르겠어.여하튼 우리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행하도록 해야지"

황무석의 말에 최형식이 고개를 숙이고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혹시 제가 걸리더라도 아저씨는 괜찮을 거예요.

제가 우발사고를 낸 것으로 끝날 거니까요"

"그걸 어떻게 장담할 수 있어?"

"저를 믿으세요.

제가 불지 않으면 되니까요.

과거 여러 번 감옥에 가서도 혹독한 고문도 이겨냈어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황무석은 생각에 잠겼다.

최형식의 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결국 최형식의 의중에 자신의 목숨이 달려 있는 것과 다름없었다.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지만 황무석으로서도 다른 도리가 없었다.

"아저씨 부탁이 있어요"

최형식의 눈빛은 부탁이 아니라 협박에 가까웠다.

"무슨 부탁이야? 뭐든 내가 할 수 있으면 해야지?"

"혹시 저한테 무슨 일이 있더라도 북에 계신 아버지와 제 자식은 고통을 당하지 않았으면 해요.

그래서 아저씨에게 어렵게 부탁드리는 건데…전에 사고나던 날 아저씨가 말한 것 있지요?"

"내가 그때 뭐라고 했지?"

무슨 말인지 퍼뜩 떠올랐지만 황무석은 모른 체했다.

최형식이 실신한 이정숙을 죽은 줄로 착각했던 당시 시신을 유기하려고 하려는 것 같아 그에게 자수를 권할 목적으로 한 말이었다.

"아저씨께서 몇 억이라도 도와줄 수 있다고 하셨지요.

아버지가 북에서 편히 여생을 마치려면 돈을 계속 부쳐줘야 해요.

자식도 자립하기까지는 돈이 필요하고요"

"얼마나 필요해?"

"아저씨가 이정숙이 죽은 줄 알고 제가 그때 자수하면 아버지에게 ''1억 2억 아니 10억이라도 드릴 수 있어''라고 했어요.

그래서 제가 10억이라고 하셨냐고 확인했지요.

아저씨께서 하느님 앞에 약속한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랬던가"

황무석은 속으로 충격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