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경쟁력 보고서의 국가순위가 정책결정자 및 투자가들을 혼동시키고 있다.

이러한 보고서를 발행하는 유력 기관은 IMD(국제경영개발원)와 WEF(세계경제포럼)로 둘 다 스위스에 본부를 두고 있다.

이들이 펴낸 보고서의 최근 2년간 국가 순위를 보면 도대체 방향감각이 없다.

한국의 예를 들어 보자.

작년 한국은 IMD 보고서에서는 47개국 중 38위로 하위그룹에,WEF 보고서에서는 59개국 중 22위로 상위그룹에 속해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너무 심했다고 생각했던지 금년에는 두 보고서가 약속이나 한 듯 한국을 비슷한 수준으로 만들었다.

IMD는 10단계를 올려 28위로,WEF는 7단계를 낮추어 29위가 됐다.

IMD와 WEF 보고서는 이론적 방법론적 정책시사적인 면 모두에 문제가 있다.

우선 이론적인 면에서,기존의 두 보고서는 경쟁력에 영향을 미칠만한 몇 개의 변수들을 적당히 선택해서 분석하고 있다.

그런데 이론적으로 취약해 변수들간에 중복이 있거나,중요한 변수를 몇 개 빠뜨리고 있다.

방법론적인 면에서도 문제가 있다.

두 보고서가 거의 같은 모델을 사용하기 때문에 연구 결과 또한 비슷해야 하지만,실제로는 한국의 경우에서 보다시피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렇게 차이가 많이 나는 것은 두 보고서가 상당히 다른 방법론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설문 대상,설문 내용,변수의 가중치 설정 등을 임의적으로 서로 다르게 적용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정책 시사적 면에서 문제가 있다.

두 보고서 모두 전체 국가를 일률적으로만 비교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00년 IMD보고서에서 미국이 1위이고 필리핀이 38위라고 할 때,필리핀이 얻을 수 있는 정책적 시사점이 무엇인가.

미국을 따라 잡기 위해서 미국처럼 첨단기술에 집중적으로 투자해야 한다는 것인가.

미국보다는 태국 인니 말레이시아 등 필리핀과 비슷한 수준의 국가들과 미국과는 다른 기준으로 비교해야 더욱 의미 있는 시사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경쟁력을 올바르게 평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선 이론적인 면에서 더욱 정밀해야 한다.

IMD가 연구를 시작했던 1980년대 중반에는 사실 국가경쟁력에 관한 이론이 거의 없었다.

1990년 이후 이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져 현재 상당한 진전을 보이고 있다.

이렇게 발전된 이론을 기초로 경쟁력 모델을 새롭게 정립해야 할 것이다.

방법론적인 면에서 더욱 공정해야 한다.

올바른 평가를 위해서 설문지 내용을 만들 때 더욱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또한 설문지를 주로 경영자들에게만 무작위로 배포할 것이 아니라 국가경쟁력을 평가할 수 있는 다양한 사람들과 좀 더 신뢰성 있는 기관을 통해서 조사해야 한다.

올바른 정책 시사점을 찾기 위해서 국가별 경제발전단계를 고려해야 한다.

선진국은 주로 첨단기술을 경쟁력의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천연자원 또는 양질의 값싼 노동력을 기반으로 하는 국가도 있다.

경쟁력의 핵심이 국가마다,발전단계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다.

기존의 보고서는 기술수준 등에만 지나치게 중점을 둬 ''선진국형 보고서''라는 비난을 면할 수 없다.

경쟁력 변수에 선진국 위주의 일률적인 가중치를 줄 것이 아니라,후진국 개도국 중진국 선진국 등으로 구분해 각각의 경우에 알맞게 적용해야 할 것이다.

국가 경쟁력 보고서가 발표될 때마다 우왕좌왕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우리 나라와 같이 경제를 빨리 회복하여 지속적 성장을 해야 하는 경우,이러한 보고서의 순위는 마치 우리 정부의 경제성적표와 같아 정책결정자와 투자가들은 물론 일반 국민들까지도 예민한 반응을 보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기존의 국가경쟁력 보고서는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다.

지나치게 반응해서 잘못된 정책이라도 시행하게 되거나,잘못된 투자를 하게 된다면 상당한 손실과 자원의 낭비를 초래할 것이다.

스위스와 같은 선진국에서 만들어진 보고서라고 무조건 믿을 것이 아니라 좀 더 나은,그리고 우리 실정에 맞는 새로운 보고서가 필요할 때다.

hcmoon@sias.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