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홍상화

"다행이긴 하지만 또다른 골칫거리가 생겼습니다"

진성호가 너털웃음 속에 말했다.

황무석이 그에게 시선을 보내자 진성호가 말을 이어나갔다.

"어제 저녁 미지한테 어머니가 한 얘기를 사실대로 털어놓았지요… 그런데 미지가 밤새 한 잠도 자지 않고 울었던 것 같아요"

"그럴 수 있지요.

여자에게 자기 아이를 떼어 놓는 것은 자신의 생명을 포기하라는 거와 같을 수 있지요"

"그렇기도 하겠지요.

하지만 아내는 의식을 완전히 회복한다 하더라도 미지의 애기를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여자예요.

어머니가 아내의 성격을 몰라 잘못 판단하고 계시지요.

그래서 일단 어머니가 하자는 대로 하면 어머니가 애를 데리고 있다가 다시 미지에게 돌려줄 거예요"

"그럴까요?…"

"그냥 이 일은 잊어버리세요.

제가 해결할 문제니까요"

"잘 해결하시겠지요.

그렇지만 모성애는 무서운 겁니다.

그리고 여자란 남자와 달리 아주 독해질 수 있지요…물론 이미지씨는 워낙 심성이 착한 여자라 별 문제는 없겠지만…"

"그냥 듣지 않은 걸로 해주세요"

진성호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황무석도 따라 일어났다.

레인보우클럽 밖에서 진성호와 헤어진 황무석은 더이상 마음의 안정을 유지할 수 없었다.

황무석은 차를 보내고 난 후 무턱대고 길을 걸으면서 생각에 잠겼다.

진 회장의 아내인 이정숙이 의식을 회복하고 있다는 말을 듣는 순간부터 황무석은 사실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정숙의 의식이 돌아오면,사고 낸 자동차의 모델이나 번호,더 나아가 최형식의 인상착의를 기억해낼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최형식이 체포될 확률이 매우 높고,자신이 최형식을 사주하고 사고를 은폐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물론 이정숙과 정동현의 불륜 사실을 캐내어 이정숙이 대해실업의 주가조작 사실을 더이상 들먹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지,이정숙을 차로 치받아 의식불명이 되게 할 의도는 없었다.

하지만 그 모든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난다면 자신이 도덕적이나 법적으로 치명상을 입을 것은 명확해졌다.

그렇다고 당장 일을 해결할 수 있는 묘안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황무석은 걸으면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회의에서 부사장직을 마지막으로 대해실업에서의 35년 직장생활을 이 기회에 끝내기로 결정하고 진성호에게 사표를 제출한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자신이 대해실업의 주가조작 사건의 주역으로 참여하면서 그 정보를 이용해 거액의 시세차액을 챙긴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이번에 대해실업과 인연을 완전히 끊음으로써 그 사실을 영원히 은폐시킬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는 일단 최형식에게 이정숙의 의식회복 사실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난번 최형식이 중국으로 아버지를 만나러 갔을 때 1천만원이나 주었으나 좀더 큰돈을 주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황무석은 길가 공중전화 부스로 들어가 최형식의 휴대폰 번호를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