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만 < 주미한국상의 회장 >

최근 월 스트리트 저널 1면에 일본의 도쿄 교향악단이 다른 교향악단을 합병하던 일을 소재로 일본과 미국의 조직합병에 대한 문화적 인식차이를 비교·분석한 기사가 실렸다.

일본경제가 장기불황에 빠져들면서 도쿄의 교향악단 재정사정이 급속히 악화되었다.

전통의 명문악단 도쿄필하모니도 연주자와 사무국 직원 급여를 제때 지급하지 못하는 처지까지 몰렸다.

결국 도쿄필은 지난 5월 신세이니혼(新星日本)교향악단과 합병키로 하는 특단의 조취를 취했다.

그런데 합병후 덩치가 오히려 훨씬 커져 버렸다.

단원중 단 한명도 해고하지 않아 수석연주자 5명 등 연주자만 무려 1백70명이 넘는 공룡악단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1972년 미국 뉴욕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으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뉴욕필하모닉과 뉴욕심포니가 합병하면서 단원을 거의 절반으로 줄인 것이다.

뉴욕필은 합병후 일단 양쪽 연주자를 전원 해고한 뒤 철저한 심사를 통해 최우수 연주자만 추려내 악단을 재구성했다.

이같은 노력으로 뉴욕필하모니가 오늘같은 세계 최고의 교향악단이 될 수 있었다.

원래 M&A(인수·합병)란 두 조직을 하나로 합침으로써 경영 효율화와 비용절감 등 조직통합의 시너지 효과를 도모해 기업 또는 조직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적극적 경영기법의 하나다.

그러나 비단 도쿄필하모니의 경우 뿐만 아니라 일본,아니 더 넓게는 아시아지역에선 M&A란 경영기법이 잘 통하지 않는다.

평생고용을 근간으로 한 아시아 특유의 조직문화 때문에 인수·합병이 원래 노리는 시너지 효과를 거두기 어려운 모양이다.

1971년 다이이치은행과 닛폰간교은행 합병도 기존 직원들의 반발로 인사부서를 수십년 동안이나 따로 유지했다.

하나의 조직에 인사부서는 둘인 기형적인 조직이 된 것이다.

한국은 지난 3년간 격심한 IMF고통을 겪고 또 경제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하면서 일본이나 다른 아시아국보다 인수·합병에 그래도 개방적인 자세가 되었다지만 아직도 미국 또는 서구식 M&A의 시너지를 기대하기는 시기상조인 듯하다.

여기서 우리는 금융개혁과 기업 구조조정의 해결방법으로서 미국식 인수·합병이 한국의 실정에 맞는 것인지 진지하게 재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오랜 문화적·사회적 풍토 때문에 인수·합병의 시너지효과를 얻기 힘든 게 우리 현실이라면 뭔가 다른 방법을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특히 합병기업 간에 협상력이 대등할 경우 기업통합 작업은 훨씬 어려워진다.

양사 경영진이나 사원이 자신의 이익 챙기기에 나선다면 합병을 통한 긍정적 시너지 효과를 갖기는 힘들다.

이런 점에서 구조조정의 방식으로 인수·합병이 불가피하다면 합병(Merger)방식보다는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주도권을 갖고 통합을 주도할 수 있는 인수(Acquisition)방식이 우리 실정에 더 바람직할 것이다.

사실 생판 다른 두 조직을 하나로 합치려면 회사를 이전하고,장비를 합치고,자산을 통합하는 등의 물리적 결합도 쉽지가 않다.

그러나 가장 어려운 점은 기존 두 조직체에서 일하던 직원들끼리 이제는 같은 회사를 위해 일한다는 생각으로 상호협조토록 하는 이른바 ''화학적 결합''을 이루는 것이다.

최근 워싱턴 연방정부 주요부처와 의회 경제연구소 관계자들을 만나 한·미간 경제현안을 논의하고 주미한국기업을 대변하는 경제단체 대표로서 우리 기업의 입장과 주장을 전할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워싱턴에서 만난 인사들마다 한국의 금융개혁과 구조조정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왜 한국이 개혁이 되는 듯 하면서도 잘 안 되는지,왜 기업들은 구조조정을 한다고 약속하면서 과감하게 하지를 못하는 지 좀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순방일정을 마치고 워싱턴을 떠나오는 비행기안에서 이제는 도쿄필하모니나 다이이치은행,서울신탁은행의 우(愚)를 밟지 않을 새로운 개혁의 솔루션(solution),특히 한국적 인수·합병의 논리를 정립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하는 새로운 명제가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