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장부를 조작하는 분식회계는 비단 국내만의 문제는 아니다.

기업경영에 관한한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자부하는 미국에서조차 분식회계가 횡행하고 있다.

급기야 지난해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아서 레빗 회장은 ''분식회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미 기업들의 분식유형도 국내기업들과 별반 차이가 없다.

재고자산이나 매출전표를 허위로 작성하는 등의 방법으로 실적을 부풀리는 경우가 분식사례의 절반에 이른다.

특히 90년대들어 성행하고 있는 기업간 인수합병(M&A)과 구조조정 과정에서 교묘하게 회계장부를 조작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비용을 실제보다 적게 잡아 실적을 부풀리거나 유보금을 이익인 것처럼 꾸미는 것이다.

지난 98년초 미 업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부동산업체인 CUC인터내셔널의 회계조작은 미 기업의 치부를 그대로 드러내는 사건이었다.

이 회사는 95년부터 3년간 엄격한 회계감사를 받으면서도 세전영업이익을 5억달러나 부풀렸다.

이익의 3분의 1 이상을 부당하게 허위조작한 것이다.

CUC인터내셔널은 분식회계를 위해 계열사인 콤프 U 카드를 동원했다.

계열사와의 허위매출조작을 통해 매출액을 늘리고 비용을 줄여 이익을 부풀렸다.

95년에는 3천1백만달러, 96년에는 8천7백만달러, 97년에는 1억7천6백만달러를 조작했다.

연말 감사시즌이 다가오면 분식사실을 숨기기 위해 장부조작금액 만큼을 적립금에서 헐어 수치를 맞추는 수법을 동원했다.

게다가 최고경영자(CEO)였던 월터 포브스는 자신의 전용비행기 유지비(60만달러)를 회사의 적립금을 헐어 쓴 후 이를 비용처리하기도 했다.

약국체인인 라이트 에이드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장부를 조작했다.

98년 3백79개 점포를 폐쇄하면서 2억9천만달러를 비용처리했다.

실제로는 2억3천3백만달러를 관련비용으로 처리해야 하는데도 전혀 관련없는 영업비용을 포함시켰던 것이다.

이같은 분식으로 라이트 에이드는 98회계연도의 영업이익을 1천4백만달러 부풀렸다가 SEC에 덜미를 잡혔다.

이들 뿐 아니다.

최근 분식회계 사실이 드러나 SEC로부터 제재를 받은 미 기업중에는 뱅커스트러스트 모토롤라 매키슨 등 쟁쟁한 기업들이 수두룩하다.

뱅커스트러스트는 90년대 중반 고객에게 돌아가야할 수익금을 은행의 이익인 것처럼 조작한 사실이 밝혀져 6억3천만달러의 벌금을 냈다.

당시 CEO였던 찰스 샌포드는 분식회계 연루의혹을 받았다.

90년대 중반이후 미 기업의 분식회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은 미국 특유의 기업풍토 때문이라고 미 경제잡지인 포천은 지적했다.

실적이 좋으면 CEO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뛰어오르는 반면 실적이 나빠지면 가차없이 해고되기 때문에 CEO들이 분식회계의 유혹에 쉽게 빠져들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거액의 스톡옵션을 받는 CEO들이 늘어나면서 부당한 방법으로 주가를 올리려는 유인이 큰 것도 회계장부 분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급기야 SEC는 △구조조정 과정에서의 비용조작 △취득원가 조작 △충당금 조작 △중요성의 원칙남용 △매출액 조작 등 대표적인 분식사례에 대한 감시감독을 한층 강화하기에 이르렀다.

적발될 경우 사안에 따라 벌금 부과는 물론 CEO에 대한 고발조치를 엄격히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분식회계를 바로잡지 못한 회계법인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징계조치를 취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분식사실이 들춰져 부실감사 사실이 드러나면 대개 투자자 등 관련피해자들이 회계법인을 상대로 법정소송을 벌여 피해를 보상받도록 하고 있다.

회계사에 대한 심판을 행정조치보다는 시장의 판단에 맡겨 놓고 있는 것이다.

회계법인이 패소할 경우 천문학적인 손해배상액을 물어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 아더앤더슨 언스트영 등 미국 5대 회계법인(빅5)들이 부실감사 때문에 손해배상으로 지출하고 있는 금액은 매년 감사수수료 수입의 10% 가량인 5억달러에 이른다(S회계법인 관계자).

웬만한 규모의 회계법인이라 하더라도 부실감사 소송에 한번 휘말리면 파산하기 십상이다.

그런만큼 미국의 회계법인들은 감사에 총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뉴욕=육동인 특파원.박영태 기자 dong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