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시애틀 세계무역기구(WTO) 뉴라운드(다자간무역시스템)출범에 실패한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회원국간의 의견충돌 때문이었다.

이전까지 미국과 유럽은 농업을 제외하면 대체로 비슷한 입장을 취했지만 이제 남북문제(경제력차로 인한 북·남반구의 견해차)만큼이나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농업뿐 아니라 노동 환경 투자 경쟁 반덤핑 문제,개발도상국 처리문제,우루과이라운드협정 시행에까지 양측이 맞서지 않는 분야가 드물 정도다.

회원국들은 시애틀회의 3개월전까지 WTO사무총장 임명을 놓고 대립,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었다.

시애틀에 모인 후에도 각국 대표들은 제네바에서 몇년간 의견대립을 겪은 문제를 단 3일만에 처리하려는 무모함을 보였다.

우리는 뉴라운드의 땅을 다지지 않은 상태로 유연한 의견조율 과정도 거치지 않고 합의도출을 서둘렀다.

정치적 의지도 부족했다.

사실 우루과이라운드 이후 세계는 많이 변했다.

우선 노동과 환경등을 둘러싸고 각국의 의견차가 더욱 심해졌다.

남북간뿐 아니라 선진국간에도 맞서는 경우가 많다.

둘째 라운드에 참여하는 회원국수가 크게 늘었다.

현재 1백37개국인 회원국수는 곧 1백39개국으로 늘어난다.

특히 개발도상국들의 요구 수위가 높아졌다.

그 결과 1백37개의 서로 다른 목소리가 사방에서 충돌하게 됐다.

세번째 변화로 자유무역과 뉴라운드에 대한 적극적 지지가 줄어들었다.

시애틀 시위가 그 대표적인 예다.

넷째 세계 무역시장은 리더십과 유연성이 부족해졌다.

이는 냉전시대가 끝남에 따라 새로운 자유무역시장을 개척할 필요성이 줄어든데다 미국의 영향력이 세계 금융정책에서는 여전하지만 국제무역시장에서는 감소했기 때문이다.

대신 WTO내에서 유럽연합(EU),동남아국가연합(ASEAN),남미의 영향력이 증대됐다.

여기에 중국이 가입하면 WTO는 더 복잡한 양상을 띨 것이다.

물론 이런 문제들이 해결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최근 돌출된 쟁점들은 우루과이라운드때의 서비스나 지식재산권 문제에 비해 특별히 심각한 정도는 아니다.

회원국수가 늘긴 했지만 개발도상국의 주요 관심사는 몇가지 생산품에 한정돼 있으며 각국의 의견차는 정기적인 의견교환을 통해 조정이 가능한 문제다.

또 시애틀에 모인 시위자들이 전체 인구의 의견을 대변하지는 않는다.

한 국제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58%가 자유무역의 긍정적 효과를 인정한다.

부정적이라고 대답한 사람은 27%에 불과했다.

그러나 뉴라운드를 발족시키는 것이 과거보다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다.

미국을 포함,세계경제가 호황인데다 신기술이 등장한 상황에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자는 주장이 호응을 얻을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특히 선진국은 다자간 협상에 의해서보다는 2국간의 쌍무적인 협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해결이 비교적 쉬운 부분은 의견 조정이 끝났다.

그러나 남아있는 이슈는 철강 섬유 농업등 각국의 보호주의 성향이 강해 합의가 어려운 분야들이다.

뉴라운드가 합의에 이르기 위해서는 민감한 사안에 관해 좀더 유연한 자세로 임하려는 정치적 의지를 보여달라고 각국 정부에 지속적으로 압력을 가하는 수밖에 없다.

미국 EU 개발도상국 모두는 같은 WTO회원국으로서 각각의 이권을 조금씩 양보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정리= 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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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마이크 무어 세계무역기구(WTO)사무총장이 지난달 25일 미국 잭슨홀에서 열린 글로벌경제통합 심포지엄에서 ''글로벌 무역 시스템에 대한 고찰''을 주제로 연설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